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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성 그물코 출판사 대표 |
정신적·시간적 큰 여유… 어떤 마음 갖느냐가 중요
귀농·귀촌의 꿈은 달콤하지만 막상 도시를 벗어나면 뭘 먹고 살아야 하나 막막해지기 마련이다. 귀촌을 떠올리면 농사일부터 생각날 만큼 도시를 떠난다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좁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시골로 가서 농사만 짓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호미와 곡괭이가 아닌 컴퓨터와 펜을 들고 귀촌 길에 오를 수도 있다. 큰돈을 벌겠다는 야심만 한켠에 접어놓으면 행복한 시골살이가 가능해진다.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머니위크>가 만난 3명의 귀촌인으로부터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골로 떠난 이들은 문화적인 풍요로움이 없을지 몰라도 시골은 심적으로, 시간적으로 큰 여유를 준다고 입을 모은다. 귀촌 후 어떤 삶을 살지는 얼마나 준비하고,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여유로운 출판사 연 장은성씨(충남 홍성)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마을로 내려간 장은성씨. 어느새 시골생활도 10년차가 됐다. 서울에서 출판업을 하던 그는 홍동마을로 내려간 이유를 "서울에서 출판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서울에서 하던 업을 그대로 가져와 이 지역에 '그물코 출판사'라는 작은 출판사를 열었다. 서울과 똑같은 일을 하지만 대신 서울에서 일을 할 때보다 한결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일은 좀 늦어지지만 쫓기듯이 출판하지 않아요. 시골에 있다 보니 더 여유가 생긴 탓이지요."
책을 한권이라도 더 출판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게을러졌다"고 하지만 그의 하루 일과는 어느 누구보다 바쁘다.
서울에서는 출판업 하나만으로도 일이 벅찼지만 지금은 자신의 일보다 남의 일을 더 많이 한다. 마을 도서관 일을 돕고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조언으로 헌책방도 꾸렸다. 농사일도 작게나마 하고, 마을의 협동조합 일을 거들다 보면 하루가 바쁘다.
"마을 내에서 제 존재감을 느끼면서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삼류 마이너 출판사를 누가 알아주겠습니까."(웃음)
특히 그는 자신이 터전으로 삼은 홍성군 홍동마을이 자신과 잘 맞는다고 말한다. 친환경적이고, 협동조합도 잘 꾸려졌기 때문. 또 자신과 같은 귀촌인구가 많아 교육·문화적인 면도 다른 시골에 비해 풍부하다.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안대학까지 갖췄다. 자신처럼 귀촌한 젊은이들은 농사를 짓기보다 서울에서 하던 일을 계속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마을 사진가가 되고, 영화를 찍던 사람은 마을 영화를 찍는다. 수입은 마을의 일을 도우면서 조금씩 보탠다.
"일과의 반은 농사를 짓고, 나머지 절반은 본인의 일을 하는 거예요. 귀촌한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홍동마을은 장씨가 추구하는 출판물의 성격과도 닮았다.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 <자발적 가난>, <모든 책은 헌책이다>, <거기 내 마음의 산골마을> 등은 그물코 출판사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귀촌한지 이제 10년째.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을까.
"아직까지 후회는 없습니다. 나름대로 힘든 점은 있었지만 다시 도시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죠. 이곳 생활에 꽤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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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훈 예술공간 돈키호테 공동대표 |
◆ 문화적인 꿈을 안고 귀향한 이명훈씨(전남 순천)
이명훈씨의 고향은 순천이다. 순천을 떠나 서울살이를 하던 그는 2009년 고향에 돌아왔다. 순천에서 '예술공간 돈키호테'를 연 그는 지역의 문화예술 인큐베이팅을 꿈꾸며 문화적 귀향을 시도했다.
"한번 고향을 떠난 제게는 향수가 있었습니다. 서울에서의 삶이 오히려 전망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다고 여겼죠. 그런 것들을 고민하다보니 '서울은 아니다'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씨와 같은 예술인에게 순천은 문화·예술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순천뿐 아니라 서울을 제외한 어느 지역이 문화적인 토양이 마련됐을까. 그는 오히려 이러한 환경이 문화예술을 하기에 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공연·전시 등 이벤트가 다양한 서울과 달리 인구 20만~30만명의 중소도시에 사는 시민들의 문화적인 욕구가 오히려 더 강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순천은 그에게 더욱 기회로 다가왔다.
서울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작업실과 작업공간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지방이 주는 장점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작업실 갖기는 꿈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순천에서 마냥 대중적인 예술만을 하지는 않습니다. 문화적으로 즐길 폭이 적은 지역에서는 다소 어려울 수 있죠. 그래도 수준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합니다."
대중성을 배제한 예술을 추구하는 그는 어떻게 수입을 올릴까.
"지역에서는 문화적인 것에 대한 갈급이 있지만 여전히 전문인력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지자체의 문화사업에 참여하거나 책자를 만드는 것 등으로 적게나마 수익을 내고 있죠. 물론 이런 비즈니스는 제 주업무는 아니지만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지역에 내려오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충분히 많다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그는 "순천에 내려와서 4년 정도 살다보니 가끔 서울에 올라가면 내려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문화적인 갈망이 있고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할 수 없는 게 아쉽지만 그걸 포기하더라도 이곳에서 삶의 질과 여유, 풍요로움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 초보 농사꾼 구재성씨(충남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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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성씨는 지난 3년여간의 좌충우돌 농촌 적응기를 '마흔의 판타지'라는 책에 실었다. |
자타공인 재테크전문가인 그는 마흔이 되던 해 돌연 귀농길에 올랐다. 시골에서도 재테크업무와 책 쓰기 등으로 여유롭게 살 것만 같은 길을 두고 그는 손에 흙을 묻히며 충청남도 부여의 농사꾼으로 변신했다.
왜 어려운 농사를 택했냐는 질문에 그는 "그저 잘 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돈을 많이 벌어야 잘 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모든 삶을 '다운사이징'해서 '참행복'을 찾으려 했죠. 도시에서는 쉽지 않았을 삶이지만 직장생활하면서 찾지 못했던 것들을 비로소 느끼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귀농한지 이제 3년차. 초보 농업인인 그는 무엇보다 마음의 준비를 철저히 했다.
"귀농 전 5년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고 6개월 전부터 본격적인 귀농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귀농학교도 다니고, 농사지식과 정책을 공부했죠. 워낙 각오를 세게 한 탓인지 힘들지는 않았습니다."(웃음)
그는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 농약을 뿌리지 않을 뿐 아니라 잡초도 같이 크도록 내버려 둔다. '땅이 잘 사는' 진짜 유기농, 친환경 농사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기르는 50가지 작물 대부분은 자급용. 자신이 먹을 만큼만 키운다. 지인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직거래로도 판매한다. 자신의 이름을 건 자식 같은 작물을 헐값에 팔 수 없어서다.
"수입은 서울에서 벌 때와 비교도 안되죠. 겨우 5분의 1 수준이지만 저축은 못해도 자급자족하므로 식비가 절약되고 시골살이를 하다보니 딱히 돈 쓸 일도 없습니다."
아직은 젊은 40대, 시골에서 살기 답답하고 문화적인 향유가 그립지는 않을까.
"책은 주로 부여도서관에 가서 한꺼번에 빌려 와서 봅니다. 영화는 가끔 특별한 날에만 군산에 나가 조조로 보죠. 간격이 길긴 하지만 없을 줄 알았던 버스도 다녀서 그저 고맙죠."
도시생활은 모든 게 구속이었다면 시골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만큼 수익이 나온다. 모든 것이 내 선택에 따라 좌우된다. 그래서 마음이 참 편하다. 그는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부농은 1%도 채 안돼요. 농사로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금물이죠. 귀농했다면 마음을 크게 먹고 옛날 생활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행복한 귀농의 시작입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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