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촌건축대전 본상에 이어 대한민국 신진건축사대상 우수상을 차지한 은재네 돌담집. 나와 내 가족이 살 집이 아니라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놀 수 있는 도서관을 지었다는 그 집엔, 도대체 어떤 이들이 살고 있을까? 초가집과 고택, 돌담이 있는 고즈넉한 마을에서 신현민, 권윤자 부부와 딸 은재, 아들 우철이를 만났다.
취재 조고은 사진 변종석
새로 지은 도서관과 작업실. 그 사이로 은재네 초가집이 보인다.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 경북 예천 금당실 마을에 가면 골목골목이 즐겁다. 나지막한 돌담 너머로 보이는 초가집과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고택의 정취가 가을내음과 어우러져 코끝을 간질인다. 마을로 들어서 가볍게 걷다 상쾌한 공기에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시고 나면, 마을회관에 다다르기 전 은재네 돌담집을 만날 수 있다. 아담한 두 채의 목조주택은 새로 지은 집이지만 벌써 마을 풍경에 제법 자연스럽게 녹아난다.
이곳엔 2년 전 귀농한 신현민, 권윤자 부부와 7살 난 딸아이 은재, 지난 8월 첫돌을 맞은 아들 우철이가 산다. 얼마 전 2014 한국농촌건축대전과 대한민국 신진건축사 대상을 휩쓸었다는 목조주택은 한 채는 벌꿀 전시·작업실, 나머지 한 채는 마을 아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도서관으로 쓴다. 두 건물을 잇는 데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초록 잔디가 깔린 안마당과 초가집 두 채가 자리하는데, 바로 정면에 보이는 안채가 네 가족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이다. 별채는 민박집으로 쓰는데, 아직 정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니고 동네 민박집에 남는 방이 없을 때 종종 소개받아 오는 손님이 있는 정도다.
“도시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건, 엄마로선 너무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윤자 씨가 두 사람의 고향인 예천으로 귀농하자 마음먹고 현민 씨에게 제안하게 된 데에는 은재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대구에서 만나 결혼한 부부는 줄곧 대구에 있는 아파트에서 생활했다. 맞벌이였던 터라, 엄마·아빠가 모두 일하러 가고 나면 은재는 보모의 손에 맡겨졌고, 어린이집에 있다가 저녁이 되면 보모나 퇴근한 부부가 데려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서로 사인이 맞지 않아 아무도 은재를 데리러 가지 않은 일이 터졌다. 윤자 씨는 놀라서 부리나케 아이를 데리러 갔고, 은재는 모두가 집에 가고 딱 하나 불이 켜져 있는 방에 선생님과 단둘이 남아있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그 일이 아직도 가슴 아프다.
그 길로 현민 씨가 1년 먼저 예천 부모님 댁에 내려와 양봉 일을 익히고, 그동안 윤자 씨는 혼자서 은재를 돌보며 일을 했다. 당장은 그게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일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엄마와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는 생활에 은재가 너무나도 힘들어했고, 아이를 봐주던 분까지 이사를 하게 되자 윤자 씨는 아이를 먼저 아빠가 있는 예천으로 보냈다. 그리고 한두 달 후,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윤자 씨까지 내려온 것이 귀농 생활의 시작이었다.
“주말마다 시댁에 오가면서 이 동네가 참 좋았어요. 전통마을이라 매물로 나오는 집이 잘 없는데, 마침 초가집 두 채에 넓은 흙 마당이 있는 이 집이 나왔죠. 초가집이라도 잘 살면 되지, 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큰일이더군요(웃음).”
특히 초가집은 지붕을 매년 새로 이어서 얹어줘야 한다. 현민 씨는 벌들이 겨울을 나는 동안 마을 주민들과 함께 초가지붕을 잇는다. 손으로 새끼를 꼬아 초가지붕을 만들어왔던 마을 어르신들에게 전통 기술을 직접 전수받았는데, 그는 이렇게 이은 전통 초가지붕이 주변 지역에 판매되기도 한다며 어깨를 으쓱한다. 이렇게 금당실 마을에 자리 잡는 동안 은재는 온 동네를 누비며 전보다 더 명랑해졌고, 작년 여름엔 둘째 우철이가 태어났다.
부부가 처음 이 집을 샀을 때, 집에는 ‘농촌 유학’을 온 아이와 엄마가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 후 1년이 조금 넘도록 이들은 별채에서, 은재네는 안채에서 함께 살았는데, 주말마다 내려와 머물다 가던 아이의 아빠가 바로 은재네 돌담집을 지어준 201건축사사무소 대표 현상훈 씨다. 집이 좁아 공간이 더 필요하다 생각하던 부부는 상훈 씨에게 ‘가시기 전에 집 한 채 지어 달라’ 부탁했다. 당시 부부가 요청한 것은 살림집이 아닌, 꿀을 포장하고 판매도 할 수 있는 작은 공간과 동네 아이들이 모여 책을 읽으면서 놀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은재가 보던 책이 많은데 이걸 혼자 보기도 아깝고, 둘째가 있어 어디 가져다주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도서관을 만들면 딱 좋겠다 생각했어요. 요즘 시골은 옛날과 달라서 아이들이 많지 않아 밖에 나가서 놀 때 걱정되기도 하고요. 또, 여기에선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려고 해도 춥거나 비올 땐 갈 데가 마땅치 않거든요. 그럴 때 이곳이 누구나 와서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음 해요.”
벌꿀 전시·작업실 출입구
벌집 쌓기한 벽돌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전시·작업실 내부
볕 좋은 날, 마당에 널어 놓은 빨래들
흙 마당이었던 곳에 자갈을 깔고 잔디를 심어 포근한 안마당을 만들었다.
“은재가 보던 책을 동네아이들과 함께볼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이곳이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음 해요.”
작은 규모도 규모지만, 서울에서 예천까지 와서 작업해야 하는 어려운 여건 탓에 처음엔 난감해 하던 상훈 씨는 취지를 듣고 나더니 단번에 승낙했다. 그 후론 상훈 씨가 예천에 내려올 때마다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작년 9월 공사를 시작해 12월 완공된 집이 바로 지금의 은재네 돌담집이다. 왜 너른 마당을 살리지 않고 집을 앞쪽에 앉혔을까 했는데, 윤자 씨는 덕분에 바깥마당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편하게 들릴 수 있고 가족에겐 아늑한 안마당이 생겼다고 설명한다.
“돌담을 터서 다시 이어야 할 부분도 있고, 조경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어요. 건축사분이 나무를 어디에 심을지, 벤치를 어디에 어떻게 놓을지 사소한 것도 꼼꼼하게 설계해주셨거든요. 마을과 집에 대한 애정이 넘치세요, 이게 누구 집인지 모를 정도라니까요(하하).”
마지막 남은 봉숭아 꽃잎을 따다 손톱에 물들이는 은재
책장 가득 꽂힌 책, 커다란 테이블, 아이들 장난감이 있는 도서관
부부의 넉넉한 마음과 특별한 인연의 건축사가 만나 지은 집엔 늘 은재와 우철이, 동네 아이들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웃집 강아지들도 놀러 와 이곳에서 은재네 강아지 ‘율이’와 마당을 한참 뛰어다니다 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집’과 ‘소유’에 대한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모, 여기에 정말 예쁜 집이 있어요. 한번 가볼래요?”
금당실 마을에서 유명하다는 소나무 숲을 지나 동네 구석구석을 산책하는 동안, 신이 나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은재의 표정에서 이곳에 대한 애정과 자랑스러움이 묻어난다. 스스럼없이 길가의 방울토마토, 대추를 따 먹고, 다채롭게 피어있는 꽃들에 정답게 안부를 물을 줄 아는 아이다. 누나를 따라 뛰노는 우철이도 마냥 기분이 좋다. 그런 두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그냥,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둠을 몰고 오는 늦가을 찬바람에 해가 저무는 저녁, 은재네 돌담집엔 늘 따스한 온기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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