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또 다른 시작] 은퇴(retire)? 새 바퀴(re-tire)로 바꿔 단 것… 케냐 빈곤퇴치 위해 달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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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8.31 03:03
[1] 정년퇴임후 글로벌 빈곤퇴치 나선 김기석 前 서울대 교수
6년전 국경없는 교육가회 창설
아프리카 찾아 글·기술 가르쳐… 함께 퇴임한 교수 3명도 동참
"120세 시대, 이제 절반 지나… 한국 넘어 세계의 동량 육성"
100세 시대, 50~60대의 은퇴(retire)는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새로운 바퀴를 달고 달리는 '리(re)' '타이어(tire)'입니다. '인생 2모작'을 넘어 수십 년을 일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 노하우를 활용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은퇴, 또 다른 시작' 기획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오늘 '리타이어(retire)'를 합니다. (은퇴가 아닌) '리(re)', '타이어(tire)'. 다시 새 바퀴를 단다는 뜻이죠. 이제 우리는 달리기만 하면 됩니다."
30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관악구 서울대 문화관 중강당. 이날 정년 퇴임하는 서울대 교수 27명을 대표해 사범대 교육학과 김기석(65) 교수가 연단에 섰다. 매 학기 이어진 서울대 퇴임 교수의 은퇴사는 엄숙했고 눈물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김 교수는 시종일관 여유 있었고 농담도 던졌다.
서울대 교육학과 김기석(65) 교수가 30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관악구 서울대 문화관 중강당에서 정년 퇴임하는 서울대 교수 27명을 대표해 연단에서 은퇴사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김 교수는 작년 여름 아프리카 서부의 부르키나파소 시골 마을에서 교육 봉사활동을 펼쳤다. /서울대 제공
"새타 교수 일동을 대신해 말씀드립니다. 이제는 서울대가 (저희와 함께) 국가의 동량(棟樑)을 넘어 세계의 동량을 양성하는 데 조력하고, 사제(師弟) 관계를 발전시켜 연구에 주력하며, 글로벌 빈곤 퇴치에 앞장설 것 아니겠습니까?"
김 교수는 이날 은퇴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 달 아프리카 케냐로 향한다. 지난 30년간 교수 생활을 하며 키워온 교육 철학 이식(移植)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원래는 퇴임식도 참석하지 않으려 했다. 지난 학기가 끝난 6월 아프리카 케냐와 부르키나파소 시골 마을에서 교육을 통한 빈곤 퇴치를 실현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대가 "봉사와 교육정신으로 정년 후에도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후학들에게 보여주시면 좋겠다"며 간곡히 요청하자 고민 끝에 수락했다.
김 교수는 재직 시절을 회상하며 "어두운 터널 속을 빠져나온 기분"이라고 했다. "생각하기도 싫은 80년대, 그땐 대학이 아니었습니다. 질곡이었죠. 아이들은 우리가 가르치는 건 놔두고 지하에 가서 이상한 번역 책을 읽고 교과서인 것처럼 공부했습니다." 김 교수는 "학생들이 모이면 최루탄을 쏴대는 현실에서 수업할 방법은 없었다"면서 "촛불을 켜고 수업하면 최루탄 가스가 없어졌다"고 회고했다. "잔혹한 정권을 상대해 분신자살까지 한 학생들을 살려야만 한다는 생각에 연구도 못 했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당시 제자들에게 "자네들이 85학번이면 난 85년도에 부임했으니 우리는 다 동기"라면서 "약속하건대 너희를 다 졸업시킬 거다"고 말했다. 그렇게 85학번 제자들을 모두 졸업시키는 데 10년이 걸렸다. 그는 "살아남으면 모두 사회의 동량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사람은 모두 변합니다. 생각·의식·가치관·인격도 교육으로 바꿀 수 있어요. 학생들이 그랬고, 우리의 리타이어도 바꾸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바뀌었고, 평생을 통해 알게 된 이 교육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간 겁니다."
자신의 학문을 은퇴 후 빈곤 퇴치에 활용하겠다고 결심한 김 교수는 2007년 본격적인 아프리카 최빈국 봉사활동을 위해 '국경 없는 교육가회(會)'를 만들었다. 교육학·의학·농업학 등을 공부한 한국인 교수 100여명과 미국·일본의 교수 50여명이 동참했다. 아프리카 케냐와 부르키나파소로 가 현지인에게 글과 기술을 가르쳤고, 소액 대출로 빈곤 탈출을 도왔다. 부르키나파소 정부는 2012년 교육으로 마을을 일으킨 김 교수의 공을 인정해 '부르키나파소 기사훈장'을 수여했다.
김 교수의 퇴임사는 희망으로 끝났다. "'조국의 가는 길을 묻거든 관악(서울대)을 보게 하라'는 구절은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조국을 놓아주고 '인류의 미래가 걱정되거든 관악을 보게 하라'고 구절을 바꿉시다." 김 교수가 퇴임 교수들을 바라봤고 박수가 터졌다. 이날 퇴임 교수 3명이 김 교수의 제2 인생에 동참하고 싶다고 밝혀왔다.
이날 퇴임식에서 서울대 개교 이래 처음으로 오연천 총장과 보직 교수들이 단상이 아닌 단하(壇下) 청중석에서 퇴임 교수들을 올려다보며 퇴임사를 들었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명예교수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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