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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고 싶은곳

7만그루 수국꽃, 반딧불이의 향연 (곤지암)

by 달빛아래서 2015. 6. 27.

7만그루 수국꽃, 반딧불이의 향연… 여름 숲의 선물

곤지암 화담숲


	여름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폭포와 수련이 어우러진 곤지암 화담숲 수련원. 사진이 잘 나오는 ‘포토존’이기도 하다.
여름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폭포와 수련이 어우러진 곤지암 화담숲 수련원. 사진이 잘 나오는 ‘포토존’이기도 하다. / 함태윤 사진가

"요즘 같은 때에…"라며 말을 잇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요즘' 같은 때이기 때문에 더 많이들 찾는다고 했다.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엔 안 간다고들 하던데 숲은 달랐다. 오히려 치유의 공간이었다. 제대로 숨 쉬고 싶은 이들에게 숲은 약이고 탈출구이자 안정제였다. 여유와 건강함은 숲의 또 다른 상징이다. 서울에서 차로 40~50분이면 닿는 경기도 광주 곤지암 화담숲을 향한 것도 그 이유였다. 서울서 가까운 정원과 숲을 찾다 숲이면서 정원인 곳에 마지막 행로가 정해진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숫자로도 증명된다. 6월 기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00% 관람객이 늘었다고 한다.

여름 숲은 봄과는 또 달랐다. 늦겨울 새하얗게 움트던 꽃잎은 날이 갈수록 요염한 색으로 갈아입는다더니 절정의 붉은 기운을 지난 초여름 꽃은 파란 바닷물 같은 푸름으로 갈아입는다. 수국(水菊)이 그랬다. 흰색, 분홍색, 연보라색에서부터 터키석의 신비한 자태를 뽐내는가 하면 청아하게 파아란 꽃잎을 활짝 틔우기도 한다. 어떤 건 어찌나 물이 잘 올랐는지 코발트 빛으로 산등성이를 메운다.


	산수국과 마크로필라수국.
산수국과 마크로필라수국. / 함태윤 사진가

나무로 된 데크를 이용해 천천히 숲을 오른다. 소담스러운 수국 무리를 지나다 보니 꽃잎이 접시 모양으로 아슬아슬하게 붙은 꽃에 다가섰다. 꽃잎이 거의 진 것인 줄 알았다. "산수국이에요. 산수국의 진짜 꽃은 그 속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무리예요. 밖에 화사하게 붙어 있는 건 가짜 꽃, 헛꽃이죠. 그걸로 벌과 나비를 유인해 번식하려는 것이죠. 수정이 되면 헛꽃잎은 뒤집히게 되고요." 곤지암 화담숲 가드너(gardener) 나석종 과장의 설명이다. 우리도 그런 거 아닐까. 이런 장식에 홀리고, 진짜를 못 알아보는 것. 혹은 그 반대로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과장하고 잘난 척, 있는 척, 아는 척했던 건 아닐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발길을 멈추게 된다. 그러다 아련해진다. 가짜 꽃이라도 만들어서 번식하려는 그 진짜의 모습이. 그렇게 애쓰고, 힘들어하고…. 풍성한 것만이 아름답다고 생각했건만 산수국의 애쓰는 소박함이 마음을 잡는다. 7040㎡(2100여평) 규모의 수국원에는 산수국을 비롯해 푸른 접시 모양으로 꽃을 피우는 탐라산수국, 떡갈나무잎수국, 나무수국 등 약 7만여 그루의 수국꽃들이 있다. 6월 중순 개화해 7월이면 만개한다. 나석종 과장은 "수국은 한 나무에서도 여러 색의 꽃이 피는데, 다른 꽃들과 달리 고유의 색을 갖고 있지 않다"며 "땅이 산성이면 연분홍, 알칼리성이면 연보라 꽃을 피운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사는 환경이 어떤지를 알려주는 지혜로운 꽃이란다.

수국을 비롯해 다채로운 여름꽃도 살포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대롱대롱 종 모양의 꽃이 금방이라도 소리를 낼 것 같은 초롱꽃, 꽃차례 아랫부분부터 위로 오밀조밀한 꽃을 피운 큰까치수염, 반짝이는 햇살에 더욱 노오란 빛을 더하는 큰금계국 군락은 햇살을 받으며 살랑살랑 금빛 물결을 이룬다. 동자꽃, 노루오줌, 비비추, 한라개승마 등 저마다 개성 있는 이름과 모양의 여름 야생화가 산책의 재미를 더 해 준다.

시원한 폭포와 멋진 소나무가 어울린 수련원은 그 아름다움에 자리를 금방 뜨기 아까워질 정도다. 다만 수련을 보려면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해가 뜰 무렵에 꽃잎을 열기 시작해 오후에 들어서는 조용히 꽃잎을 닫기 때문에 활짝 피어 있는 수련을 보려면 아침부터 일찍 서두를 필요가 있다. 수련(睡蓮)의 '수'자가 물을 뜻하는 게 아니라 잠자다(꽃잎을 오므리다)라는 뜻인 것도 이제 이해할 듯하다. 수련원에는 온대 수련을 비롯한 열대 수련 등 50여 품종이 전시되고 있다.

날이 어둑어둑해진다. 드디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신호가 온 걸까? 나석종 과장이 갑자기 방향을 튼다. 물 위를 걷는 사람처럼 못 위를 성큼 걷더니 가지런히 모은 손을 보여준다. 까만 밤에 손안에 별이 떴다. 반디였다. 실제로 가까이서, 아니 멀리서라도 본 건 기억이 남아 있는 한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릴 적 봤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까만 밤처럼 까마득하다. 형광 노란 불빛이 파닥파닥파닥파닥…. 찌르르르 하는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닌데, 몸에서 발산하는 빛이 괜히 찌르르르하다. 자연과 접속된 느낌!


	반딧불이.
반딧불이. / 함태윤 사진가

곤지암 화담숲은 지난 2009년부터 자연생태계의 복원을 목적으로 국내·외 기술진의 조언을 받아 반딧불이 유생과 그 먹이인 토종 다슬기가 살 수 있는 서식지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반딧불이는 현재 세계적으로 2000여종, 우리나라엔 8종이 있다고 전해지나 실제로 국내에서 채집되는 건 기껏해야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3종뿐이다. 곤지암 화담숲에서는 여름인 6월에 애반딧불이를, 가을인 9월에 늦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애처롭다…." 주위에서 탄식이 이어진다. "아름답다"란 말을 잘못들은 줄 알았다. 알·유충·번데기 과정을 거쳐 1년 만에 짝을 찾아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는 일주일에서 최대 보름 사는 동안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단다. 번데기 과정에서 입이 퇴화하여 성충이 되어서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피부를 통하여 아침 풀잎 사이의 습기 정도를 흡수하는 정도다. 짝짓기 불빛으로 체력을 소진하며 짧은 생을 마감한다. 작은 불꽃처럼 살다가는 반딧불이를 두고 그저 아름답다고 넋 놓고 있는 게 오히려 미안하다.

쉴 새 없이 여기서 반짝, 저기서 반짝인다. 신기하고 애잔하다. 정열의 증거는 검은 밤사이로 점점 빛난다.

여행 수첩

곤지암 화담숲에서는 28일까지 반딧불이 이벤트를 진행한다. 매일 밤 9시~10시 30분까지 반딧불이원 일대에서 진행되는데, 숲 해설가의 반딧불이의 생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계곡을 따라 난 데크길을 걷다 보면 밤하늘에 반짝반짝 펼쳐지는 빛의 향연을 관람할 수 있다.

환경에 민감한 반딧불이를 보호하는 목적 때문에 하루에 1000명 관람 제한이 있다. 곤지암 화담숲 홈페이지(www.hwadamsup.com) 또는 대표 전화(031-8026-6666)를 통해 예약하는 게 좋다. 반딧불이 관람 성인 4000원, 투숙객·경로·어린이 3000원. 화담숲 이용료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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