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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과 크리스천아카데미의 실체

by 달빛아래서 2016. 10. 19.


<페이스북 김대령님의 글을 공유한 것>

대령님이 추억을 공유했습니다.

기가 막힐 일이다. 한상렬 목사가 신학생이었던 1977년 한명숙이 한국신학대학교 선교신학대학원 신학석사를 취득하였다고 한다. 한명숙이 선교사인가? 문제는 기독교 선교사가 아니라, 주체사상 선교사였다는데 있다. 한명숙이 북한이 보내준 책을 학습한 후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여공들을 상대로 주체사상 선교활동을 한 사건을 용공단체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이라고 한다.
그 사건으로 한명숙이 광주사태가 일어나기 몇 달 전에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가가 광주사태가 끝난지 몇 달 후에 석방되었는데, 어째서 그녀가 5.18 유공자인가? 김대중 정부와 북한의 논리에서는 한명숙이 5.18 유공자인 것이 맞다.
북한군이 광주사태 때 여러 차례 광주교도소를 습격한 이유가 단지 문근영의 외조부 류락진이 수감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 관련자 한명숙이 수감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은 좀 더 정확히 말해서 통혁당 재건위 사건이었다.... 한명숙의 남편 박성준이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관련된 간첩이었다. 그런데 통혁당 재건위 사건의 본질은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사건이었으나, 박현채가 거대 조직 남민전 동지들을 보호하기 위해 통혁당 재건위 사건이라고 축소 자백하였던 것이다.

광주사태 당시 광주교도소에는 70 여명의 남민전 전사들이 수감되어 있었는데, 남민전 전사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혁명전사라고 불렀고, 김일성 역시 그들을 혁명전사라고 불러 주었다. 북한군은 광주교도소 습격 작저에 성공하면 남민전 전사들을 중심으로 시민군을 조직하고 수천 명의 죄수들을 무장시키려 하였다. 따라서, 만약 북한군의 광주교도소 작전이 성공하여 북한군의 도움으로 석방되었을 때 한명숙이 어느 편에 섰을 것인지를 상상해 보라. 남민전의 지도급이 한명숙의 남편 박성준의 통혁당 동지들이었다.

한명숙과 박성준이 1981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석방되도록 도와준 인물은 정의구현사제단과 가톨릭농민회를 만든 지학순 주교였다. 1980년 5월 19일 전라도 가톨릭농민회의 무장반란 음모를 도와주기 위해 사북사태 직후 지학순 주교는 이창복 등을 강원도로부터 광주로 급히 이동시켜 노동자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그 교육 대상 중에 김무성 집 공장인 일신방직 여공들이 있었다. 일신방직 여공들은 나중에 시민군 가두방송 및 취사요원으로 동원되었고, 백남기 농민은 훗날 가톨릭농민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한명숙 #박성준 #가짜518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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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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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령님이 John F Hwang님과 함께 있습니다.

한명숙이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되는가?

광주사태의 또 하나의 숨은 배후가 한명숙의 남편 박성준이었다. 통혁당은 1968년 북한이 김대중을 국회로 보내주기 위해 만든 정당으로서 간첩조직이었다. 1970년대 후반에 통혁당이 재건되었는데, 이를... 통혁당재건위라고 불렀다. 내가 박성준의 통혁당재건위 활동 관련 기록을 모두 가지고 있다.

<남조선 민족해방전선>의 정당은 통혁당이었으며, 이 통혁당이 북한과 접선하며 무장봉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박현채와 박성준이 북한에서 보내준 책자로 운동권 후배들에게 사회주의 비밀지도를 하고 있었다가 발각되어 벌어진 재판이 바로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있었을 무렵 진행되고 있었던 통혁당재건위 사건이었다. 이때 통혁당재건위의 두 거두 박현채와 박성준은 무장봉기 준비를 선동한 일은 없으며, 북한의 책자는 경제학자로서 학문적인 연구 목적으로 소장하고 있었던 것뿐이며, 통혁당재건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변호로 그 재판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지난 2012년 기독일보 논단에서 “좌파였던 서경석 목사가 왜 지금 보수가 되었나” 제하의 글에서 서경석 목사는 박성준은 이미 1968년의 통혁당 사건 때 통혁당 요원으로서 운동권 후배들을 대상으로 사회주의 비밀지도를 하고 있었던 사실을 이렇게 증언한다:

“제가 왜 이런 말을 자신있게 하는가? 저도 젊은 시절 친북좌파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 2학년 때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었습니다. CCC 경제복지회에 가입했는데 그곳에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의 남편인 박성준 씨를 만나 그분으로부터 사회주의 비밀지도를 받았고 그 결과 사회주의를 신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통혁당사건이 터지면서 박성준 선배는 징역 15년형을 언도받았고 저는 잡혀갔다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훈계방면 되었습니다.”

사진에서 한명숙은 크리스찬 아카데미 용공서클 사건으로, 박성준은 통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잠시 복역한 후 1980년대 초에 금방 석방되는 장면이 보인다. 1970년대 후분에 한명숙도 북한 이념 책자로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의식화교육을 하고 있었다. http://www.christiandaily.co.kr/…/4.11%EC%B4%9D%EC%84%A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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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사람 3명 , 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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