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5년째 꾸준히 아웃도어 요리를 선보이고 있는 한 남자. 얼마전 강릉의 낡은 농가를 개조해 그만의 색다른 아지트를 꾸렸다.
“사람들이 그래요. 외모만 보면 힘든 일 못 할 것 같다고. 여기 오기 전에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클럽 좋아할 것 같다’였어요. 클럽은 한 번도 안 가 봤는데 진짜 억울하죠.”
시골에 사는 총각이라기에 수더분한 모습일 줄 알았더니, 이태원 한복판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차림새로 취재진을 맞이한 박종헌 씨. 가마솥에 밥을 하고 참나무 숯을 넣은 화로에 생선을 구워 요리를 뚝딱 완성하는 반전까지 보여준다. “이렇게 (불을 직접 피워) 밥을 해야 맛있다”며 낯선 방문객에게 한상을 내어주는 그. 왜 시골로 왔는지 묻지 않아도 행동으로 그의 천성이 엿보인다.
“김치를 담글 때 다시마, 멸치, 생선 머리(명태)를 우린 육수를 넣으면 맛이 정말 시원해요. 이게 엄마 레시피인지, 강원도 레시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올해로 귀촌 5년 차인 그는 시골에 오기 전 서울에서 14년 동안 브랜드 디자인부터 인테리어에까지 손을 뻗으며 억척스레 일하던 ‘도시남’이었다. 어머니의 병환을 계기로 강원도 정선으로 귀촌한 것이 지난 2011년. 그때부터 아픈 어머니를 위해 몸에 좋다는 약초와 야생버섯을 캐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루도 나무를 하지 않으면 추워서 생존할 수 없었다는 그의 첫 귀촌 생활은 ‘정글의 법칙’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모신 어머니를 떠나 보내고 다시 도시로 돌아왔지만, 답답한 일상은 그에게 늘 시골 생활을 떠올리게 했다.
정선을 ‘시즌 1’이라 칭한 종헌 씨의 귀촌 생활은 몇 번의 이사 끝에 두 달 전, 강릉의 오래된 농가를 개조해 자리 잡으면서 ‘시즌 4’가 되었다. 집 리모델링을 마치고서는 눈이라도 내리면 발이 묶이는 강릉에서의 겨울 생활을 단단히 채비했다. 장을 담그고, 김치를 담가 항아리에 묻어놓고, 시래기를 말리는 작업을 하며 저장 음식을 만드느라 정신없이 바빴다고.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어깨너머 배우던 요리를 혼자 하기 시작했고, 그걸 온라인 커뮤니티에 ‘총각의 자연밥상’이라는 타이틀로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직접 메시지까지 보내 악담을 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요리 비법을 묻거나 그의 귀촌생활이 담긴 사진과 글을 기다린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찌개에 들어가는 장도 제가 담갔어요. 포대 안에 삶은 콩을 넣어 양말 두 켤레를 겹쳐 신고 사람이 직접 밟아야 맛이 나요. 양말 두 켤레를 신어도 사실 너무 뜨겁죠. 가마솥에 요리하고, 가마솥을 닦고 길들이는 법도 어머니께 배웠어요. 이제는 혼자 해야 하니까 그런 것들을 계속 기억해내려 해요. 실패할 때도 있지만 다 배우는 과정이죠.”
회사에 다니던 도시인이 어느 날 갑자기 맞이한 귀촌 생활이었지만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건 어머니 덕분이다. 주말마다 김치 300포기를 함께 담자고 호출하거나 장을 담그기 위해 콩이 한가득 든 포대를 두고 기다리던 어머니는 그를 귀촌 생활에 최적화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음식뿐 아니라 살림을 하고 텃밭을 가꾸는 일까지 배웠기 때문에 귀촌 후의 일상이 그에게는 ‘그저 주말이 늘어난 삶’일 뿐이다.
멀리서 보면 캠핑을 소재로 한 버라이어티 예능 같기도 한 종헌 씨의 일상. 도시에서 단단하게 쌓아온 커리어로 여전히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어 가능한 삶이다. 일이 많이 들어올 때는 며칠 동안 집안에서 컴퓨터만 잡고 작업만 할 때도 있고 비정기적인 수입의 압박도 있지만, 도시의 삶보다 훨씬 자유롭고 풍요로운 나날이다. 종헌 씨 자체가 ‘일을 사서 하는 사람’이기도 해 그만큼 하루하루가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본업인 디자이너의 수명이 끝난다” 말하면서도 하고 싶은 일들도 많고, 새로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땐 눈이 반짝이는 그. 다음엔 어떤 모습으로 변신해 우리를 초대할지 기대되는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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