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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가라사대

by 달빛아래서 2010. 5. 12.

[윤용인의 아저씨 가라사대] 반말 화법의 유혹을 받고 짧은 말이 편리해지면…

  • 윤용인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
  • 입력 : 2010.05.12 03:11
윤용인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
아무리 '가재는 게 편' 이라지만 때때로 게 편이 아니고 싶을 때가 있다. 같은 아저씨지만 우리 편 안 하고 싶은 아저씨를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기분 좋은 봄 산의 하행 길에서 대낮부터 막걸리에 취해 고성방가하는 아저씨 무리를 보는 것은 즐겁지 않다.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찢어져라 다리를 벌리고 앉아 유연한 고관절 향상에 일로매진하는 아저씨의 자태는 때때로 흉측하다. 민방위 훈련 사이렌 소리에 버금가는 전화벨이 울리면 버스 안을 온통 기합의 무도장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위풍당당함도 상당히 부담된다.

물론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안다고, 그런 행동에 슬쩍 측은지심도 생긴다. 모처럼 동창과의 산행에서 술 한잔에 되찾은 청춘의 혈기가 이해되고, 나오는 배의 중력이 다리 벌어짐을 유발한다는 것이 측은하고, 귀가 어두워지니 자기 목소리도 듣지 못해 음성만 커지는 것이 안쓰럽다. 가는 세월 누가 막을 것이며, 오는 주책 어찌 밉다고만 하랴. 그저 속으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라며 타산지석(他山之石)의 다짐 한 번 하는 수밖에.

그러던 차에, 친하게 지내는 서른 후반의 후배와 소주 한 잔을 마시는 자리에서 후두부를 제대로 가격당했다. 이제 막 스물을 넘겼을 법한 총각 알바생이, "술은 뭘로 드려요? '나중처럼'이요, '참구슬'이요?" 라고 되물었을 때, " 뭐, 아무거나"라고 뒷말을 흐린 것이 사단이 되었다. 술에 취한 후배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말했다. "형, 술집에서 종업원들에게 반말 좀 하지 마요. 그것 보기 정말 안 좋아요."

아닌 밤 중에 홍두깨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가락도 유분수다. 내가 가장 닮기 싫어하는 아저씨들이, 식당이나 술집에서 "언니야(또는 야!), 메뉴판 좀 갖다 줘"라며 말을 끊어 드시는 형아들이 아니던가. 비단 식당뿐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어른싸움은 윗사람의 하대가 불을 붙이고, 아랫사람의 반발이 화력을 키운다. 접촉 차량 두 대를 사이에 두고, "너는 애비 에미도 없냐?"와 "반말은 당신 자식에게나 하라"가 오가는 설전은 민망하고 볼썽사납다.

그랬던 나였으니 후배의 지적은 은근히 억울했고, 공연히 배알이 꼴렸다. '내가 언제 그랬냐', '몇 번 그런 모습을 봤다' 등의 공방이 오고 간 후에 나는 꼬리를 슬쩍 내려버렸다. 딴에는 친근함의 표시 혹은 자연스러운 말투라고 구사했던 것들이 나의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TV에서 검사가 PD에게 반말을 하고, 장관이 학생에게 짧은 말을 하고, 대통령이 시장 사람에게 단축어를 구사하는 장면을 볼 때, 비록 그들은 그것이 격의 없는 표현이라 생각했겠지만 내 눈에 그들은 천박해 보였고, 뱃속에서는 용암이 보글보글 끓었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반말의 화법이 유혹하고, 나이가 들면 짧은 말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법이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드시고 반말은 아저씨가 만들었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불편하더라도 늘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안 했던 것 하려 해서 생기는 어색함은, 느닷없이 반말 들은 사람의 불쾌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남 이야기할 것도 없다. 가재라 생각했으나 결국 게가 되고 있었던 나부터 조심할 일이다. 이상 반성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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