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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거리에 詩한귀절을

by 달빛아래서 2010. 6. 11.
사설·칼럼
독자의견

[편집자에게] 국적 불명의 '서울 르네상스'

  • 박진임 평택대 미국학과 교수

입력 : 2010.06.10 23:07 / 수정 : 2010.06.11 00:26

박진임 평택대 미국학과 교수
2010년 서울에 필요한 것은 시(詩)와 시심(詩心)이다. 많은 전문가가 지적했듯이 서울 르네상스에서 우리는 한국의 전통이 스며든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도로가 정비되고 밤이면 휘황한 조명이 거리를 휩싸고 복원된 청계천에는 물이 흐르고 세종로에도 다양한 조형물이 들어서긴 했는데 그 모든 것이 너무 인공적이고 복잡해서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빚어내는 여유로움과 친근함을 찾기가 어렵다. 너무 짧은 시간에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의욕이 지나쳤던 것일까? 서울 정비를 혹평하는 이들은 "술집 여자가 화장한 것 같다"고까지 한다.

지금 서울에 부족한 전통과 여유, 그리고 품격을 불러올 수 있는 첫 시도로 필자는 서울 곳곳에 우리 시를 써 붙일 것을 제안해 본다. 소월·영랑·육사나 윤동주의 시가 지하철에, 거리에, 공원에 걸려 있으면 좋겠다. 한 연이라도, 혹은 한 줄이라도. 그리하여 한글을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한국인이든 여행자든 다문화가정의 일원이든 외국인 노동자이든 그 어휘에 이끌리게 했으면 한다. 어렴풋이 풍겨나는 그 시적 정조에 잠깐이라도 지친 발길을 멈추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을 갖게 되면 좋겠다. 필자가 사랑하는 양재천 산책길에는 길을 표시하는 큰 바위가 앞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렇게 씌어 있다. '걷고 싶은 길.' 참으로 시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표지를 붙이는 민족은 시가 무엇인지 역설이 무엇인지 심상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민족일 것이다. 봄이면 진달래 피는 그 길에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하고 한 귀퉁이에 살짝 써 둘 수는 없을까?

지금 서울 지하철에는 짧은 읽을거리가 걸리곤 한다. 주로 지하철역에서도 더운물을 이용할 수 있다거나 하는 광고용 글, 또는 힘든 삶에 용기를 주고자 하는 짧은 에세이들이다. 그런 글들은 다른 곳에 붙여도 좋을 것이다. 바쁜 도시인들에게 위로를 주기에는 지나치게 멜로드라마적인 것이 많다. 생략과 암시가 없다. 서울 시민으로 하여금 생각하고 음미하게 하지 않고 알리고 가르치려고 한다. 노린 효과와는 반대로 시민은 더욱 짜증스러워진다. 스포츠로 드라마로 음악으로 이제 세계에 진출하는 한국인, 서울 시민의 문화적 안목을 시가 따라주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곳곳에서 아름다운 시 구절을 마주할 수 있고, 밤이면 세종로에 국적 불명의 조명 대신 청사초롱이 내걸리고, 우리의 전통이 적절히 가미된 한국적인 건축물과 조형물이 들어선 서울을 기대한다. 그러나 한꺼번에 너무 많이 말고, 조금씩, 띄엄띄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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