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 2010.10.14 02:54
황장엽씨 2년 전 자작시 처음 공개
"벌써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이 세상 하직할 영이별 시간이라고…(중략)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가나/걸머지고 걸어온 보따리는 누구에게 맡기고 가나/정든 산천과 갈라진 겨레는 또 어떻게 하고(중략) 삶을 안겨준 조국의 거룩한 뜻 되새기며."고(故)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가 2년 전 자기 운명을 예감한 듯 썼던 '이별'이란 제목의 시(詩)가 13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시는 지난 2008년 4월 23일 황씨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서정수(66) 민주주의정치철학연구소 이사에게 건넨 자작시다. 황씨는 당시 매주 수요일마다 사무실에서 서 이사를 비롯한 지인 7명과 함께 민주주의 철학에 대해 토론했다.
서 이사는 "평소 황 전 비서가 시를 잘 쓴다고 생각해 '시를 한번 써보는 게 어떠시냐'며 시집 출판을 권유했었는데, 세미나하던 날 '기억력도 감퇴해 더 이상 책 쓰기가 힘들다'고 하시면서 자작시를 내게 보여줬다"고 했다. 그때 서 이사가 "선생님, 왜 가신다고 쓰셨습니까? 가시더라도 김정일이 죽는 것 보신 후에 가셔야죠"라고 하자 황씨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고 한다. 서 이사는 그 자리에서 '이별'이란 제목을 붙여줬다고 했다. 1주일 뒤 서 이사가 시를 타이핑해서 전하자, 황씨는 "서 박사와 나만의 비밀로 합시다"며 시가 적힌 종이를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고 한다. 황씨는 평소 지인들에게 "아주 절박했을 때 시 몇 편을 썼었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 이사는 "고인이 자기 운명을 예상하고 쓴 시를 생전에 공개할 수 없었다"면서 "시 중간에 '보따리는 누구에게 맡기고'라는 부분을 읽으며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2008년 1월 1일에 쓴 것으로 돼 있는 이 시는 14일 고인의 영결식 때 상영되는 황씨 추모영상 첫 부분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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