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화장품’으로 인생역전
시사INLive |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 입력 2011.02.09 08:59
흰 가운에 흰 장화, 흰 모자를 썼다. 맨얼굴만 멀쑥이 나온 모습이 민망해 살짝 웃었다. 이제 장갑만 끼면 본격적인 공정에 들어간다. 면장갑을 낀 뒤 노란 고무장갑을 끼었다. 손 시림을 막기 위해서다. '완전 무장'을 하고 감자 보관소로 들어갔다. 공장 밖에서는 눈발이 날렸다. 강원도 영월의 감자 화장품 공장 '비단생'. 직접 화장품을 만들어보고, 직업을 소개하기 위해 지난 12월27일부터 1박2일간 이곳에 머물렀다. 지난해 희망제작소는 천연화장품 사업을 '천 개의 직업' 중 하나로 꼽았다. 화장품은 대기업만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다. 그중 지역에서 나는 감자로 비단결같이 생생한 피부를 만들겠다는 이 회사를 찾았다.
감자 20kg이 담긴 상자 7개를 꺼냈다. 이 지역에서 재배해 직거래한 감자이다. '윙' 소리 나는 기계에 감자를 집어넣었다. 잠시 후 노란 속을 드러낸 감자가 나타났다. 한 손에 두 알씩 집어들고 감자 써는 기계에 넣었다. 깍두기 모양으로 썰린 감자가 물이 담긴 큰 통에 풍덩풍덩 담겼다. 물에 씻긴 감자를 바가지로 건져내 건조대에 널었다. 감자가 점점 빠른 속도로 통에 담기자 정신이 없었다. 다양한 상상력을 키우는 직업을 소개한다는 기사의 목적을 잊을 지경이었다. 허리를 숙이고 감자를 옮기다보니 귓가에 "여기는 대한민국~ KBS~ 체험! 삶의 현장입니다~"라는 가수 조영남의 말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딴생각도 잠시.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감자 140kg이 채반 26개에 담겼다. 젖은 감자는 12시간 동안 건조기에 들어갔다.
다음 날 따끈따끈하게 마른 감자를 건조기에서 꺼냈다. 크기가 5분의 1 정도로 줄어 있었다. 무게를 재니 26kg이다. 말린 감자는 분쇄기에 넣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거나 중탕으로 추출물을 걸러낸다. 팩, 샴푸, 비누 등 감자 화장품의 주원료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식재료이던 감자와 시료가 뒤섞여 숙성된 뒤, 천연화장품으로 바뀐다.
"겁내면 사업 못한다, 절벽에서 뛰어라"
이 중에서 기자는 감자팩 만들기에 도전했다. 한약 추출물과 감자 가루를 섞고 쪘다. 2시간 뒤, 하얀 김 사이로 감자팩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초콜릿이 녹은 것 같았다. 천연 카카오 가루로 색감을 내서다. 끝으로 라벤더 향 등을 넣었다. 3일 정도의 숙성 기간을 거쳐 용기에 포장되어 소비자와 만난다.
엄현준 비단생 대표는 영월에서 나고 자랐다. 강원도 영월 출신으로는 처음 카이스트에 들어가 '축 카이스트 합격'이라는 플래카드를 동네에 걸었지만,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소설가라는 꿈과 카이스트라는 현실 사이를 방황한 끝이었다. 유일하게 마음을 두었던 야학 교사를 6년간 하다가 결혼했다. 생활고로 2년 동안 대전에서 학원 강사를 했다. 스타 강사여서 벌이는 풍족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세상에서 가장 필요 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자괴감과 함께 조직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힘겨웠다.
2000년 영월에 인터넷이 깔림과 동시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감자 직거래를 시작했다. 2000만원으로 시작한 사업 'e-감자'는 매년 판매 수익이 1억원씩 늘었다. 매출과 더불어 감자 판매량도 늘었지만, 재고도 늘었다. 남아서 버리는 감자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2005년 화장품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더운 날 감자팩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감자의 미백 효과와 진정 작용을 이용한 화장품을 내면 '지속 가능한' 감자 산업을 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화장품의 'ㅎ'자도 모른다는 사실도 그의 도전 의지를 꺾진 못했다.
과정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카이스트 물리학과를 중퇴한 깜냥을 기본으로 화장품 공부부터 시작했다. 크림화한 감자 분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딱딱해졌다. 크림 상태를 유지시키기 위해 2년 동안 다양한 실험을 했고 마침내 방법을 알아냈다. 그가 만든 감자팩은 2007년 9월 출시되자마자 옥션과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감자팩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천연화장품 사용자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이후, 감자 샴푸와 감자 비누 등도 시장에 내놓았다. 아토피가 심한 셋째를 위해 만든 아토피 에센스도 추가로 출시했다.
주로 지식을 팔던 그가 창업에 나섰을 때 걱정은 없었을까. 그는 "겁내면 못하는 게 사업이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절벽에서 뛰어내린다는 심정으로 무식하게 도전하면 된다고 했다. 막상 뛰어내려보면 높이가 1m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감자 화장품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2008년 직거래 사업체를 팔았지만, 아직 감자 화장품 사업은 연 매출 1억~2억원이다. 매출이 매년 늘고 있지만 직거래 때에 비하면 상승세가 약하다. 걱정이 되긴 하지만 초조하지는 않다. 그의 꿈은 단지 성공한 화장품 CEO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자 클러스터를 만들어서 먹는 감자부터 화장품, 의약품, 테마 관광단지까지 감자로만 먹고사는 1·2·3차 산업단지를 꿈꾼다. 그는 현재도 직거래한 영월 감자를 화장품 재료로 쓰고, 영월 사람들을 비정기적으로 고용하면서 지역밀착 사업을 하는 중이다.
이 직업은
천연화장품 사업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오히려 농촌이야말로 창업하기 좋은 곳이다. 신선한 작물을 빨리 공급받을 수 있어서다. 엄현준 대표도 "흔히 공장 설립 3조건을 노동·자본·시장이라고 한다. 농촌에서 사업을 시작하면 노동·자본이 저렴한 데다, 인터넷 발달로 시장의 문턱도 많이 낮아졌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시작할까?
화장품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여성환경연대' 등에서 운영하는 천연화장품 만들기 워크숍에 참여해보자. 초보자들도 쉽게 만들어 쓸 수 있는 보디로션·립밤 등을 가르쳐준다.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에서 창업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감자 20kg이 담긴 상자 7개를 꺼냈다. 이 지역에서 재배해 직거래한 감자이다. '윙' 소리 나는 기계에 감자를 집어넣었다. 잠시 후 노란 속을 드러낸 감자가 나타났다. 한 손에 두 알씩 집어들고 감자 써는 기계에 넣었다. 깍두기 모양으로 썰린 감자가 물이 담긴 큰 통에 풍덩풍덩 담겼다. 물에 씻긴 감자를 바가지로 건져내 건조대에 널었다. 감자가 점점 빠른 속도로 통에 담기자 정신이 없었다. 다양한 상상력을 키우는 직업을 소개한다는 기사의 목적을 잊을 지경이었다. 허리를 숙이고 감자를 옮기다보니 귓가에 "여기는 대한민국~ KBS~ 체험! 삶의 현장입니다~"라는 가수 조영남의 말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딴생각도 잠시.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감자 140kg이 채반 26개에 담겼다. 젖은 감자는 12시간 동안 건조기에 들어갔다.
ⓒ시사IN 백승기 |
"겁내면 사업 못한다, 절벽에서 뛰어라"
이 중에서 기자는 감자팩 만들기에 도전했다. 한약 추출물과 감자 가루를 섞고 쪘다. 2시간 뒤, 하얀 김 사이로 감자팩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초콜릿이 녹은 것 같았다. 천연 카카오 가루로 색감을 내서다. 끝으로 라벤더 향 등을 넣었다. 3일 정도의 숙성 기간을 거쳐 용기에 포장되어 소비자와 만난다.
엄현준 비단생 대표는 영월에서 나고 자랐다. 강원도 영월 출신으로는 처음 카이스트에 들어가 '축 카이스트 합격'이라는 플래카드를 동네에 걸었지만,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소설가라는 꿈과 카이스트라는 현실 사이를 방황한 끝이었다. 유일하게 마음을 두었던 야학 교사를 6년간 하다가 결혼했다. 생활고로 2년 동안 대전에서 학원 강사를 했다. 스타 강사여서 벌이는 풍족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세상에서 가장 필요 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자괴감과 함께 조직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힘겨웠다.
2000년 영월에 인터넷이 깔림과 동시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감자 직거래를 시작했다. 2000만원으로 시작한 사업 'e-감자'는 매년 판매 수익이 1억원씩 늘었다. 매출과 더불어 감자 판매량도 늘었지만, 재고도 늘었다. 남아서 버리는 감자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2005년 화장품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더운 날 감자팩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감자의 미백 효과와 진정 작용을 이용한 화장품을 내면 '지속 가능한' 감자 산업을 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화장품의 'ㅎ'자도 모른다는 사실도 그의 도전 의지를 꺾진 못했다.
강원도 영월에서 난 감자를 잘라 말리고 빻아서 천연화장품으로 만들었다. 기자가 직접 만든 감자팩을 발라보기도 했다. 맨 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의 남성이 엄현준 비단생 대표이다. |
주로 지식을 팔던 그가 창업에 나섰을 때 걱정은 없었을까. 그는 "겁내면 못하는 게 사업이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절벽에서 뛰어내린다는 심정으로 무식하게 도전하면 된다고 했다. 막상 뛰어내려보면 높이가 1m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감자 화장품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2008년 직거래 사업체를 팔았지만, 아직 감자 화장품 사업은 연 매출 1억~2억원이다. 매출이 매년 늘고 있지만 직거래 때에 비하면 상승세가 약하다. 걱정이 되긴 하지만 초조하지는 않다. 그의 꿈은 단지 성공한 화장품 CEO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자 클러스터를 만들어서 먹는 감자부터 화장품, 의약품, 테마 관광단지까지 감자로만 먹고사는 1·2·3차 산업단지를 꿈꾼다. 그는 현재도 직거래한 영월 감자를 화장품 재료로 쓰고, 영월 사람들을 비정기적으로 고용하면서 지역밀착 사업을 하는 중이다.
이 직업은
천연화장품 사업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오히려 농촌이야말로 창업하기 좋은 곳이다. 신선한 작물을 빨리 공급받을 수 있어서다. 엄현준 대표도 "흔히 공장 설립 3조건을 노동·자본·시장이라고 한다. 농촌에서 사업을 시작하면 노동·자본이 저렴한 데다, 인터넷 발달로 시장의 문턱도 많이 낮아졌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시작할까?
화장품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여성환경연대' 등에서 운영하는 천연화장품 만들기 워크숍에 참여해보자. 초보자들도 쉽게 만들어 쓸 수 있는 보디로션·립밤 등을 가르쳐준다. 희망제작소 소기업발전소에서 창업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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