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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

트랙터로 세계일주 하는 한국농부의 용감한 아들

by 달빛아래서 2012. 8. 19.

 

[Why] 한국 농촌 해법 찾아 해외 누비는 '농부의 아들' 강기태

  • 한현우
  • 입력 : 2012.08.18 03:03

    트랙터 세계일주… 구름 따라 꿈 따러 다니는 청춘

    가래나 쟁기, 써레를 달아 농사를 짓는 데 쓰는 트랙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고 있는 한국인 청년이 있다. 그는 이미 2008년 9월부터 6개월에 걸쳐 한국을 트랙터로 4500㎞나 누비는 여행을 했고, 지금은 터키의 시골 길을 달리며 현지 농부들과 만나고 있다. 한국교원대 체육교육과를 수석 졸업했으나 교사의 꿈을 접고 '농부의 아들'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은 강기태(28)씨다. 경남 하동이 고향인 그는 스스로를 '하동의 아들' 또는 '트랙터 청년'이라고 부르며 "한국 농촌을 보여주는 민얼굴로 트랙터만한 게 없다"고 했다. 터키 수도 앙카라 근처 작은 마을을 여행 중인 그와 지난 13일, 16일 두 차례에 걸쳐 전화로 인터뷰했다.

    터키 초원에 선 강기태씨. 농촌 시골 길로만 터키를 횡단하느라 총 1만3000㎞가량을 달려야 한다. 그는 트랙터를 타고 가다가 터키 농부들을 만나면 즉석에서 함께 일을 하며 낯선 나라의 농촌을 체험하고 있다. 오이밭에서는 오이를 따고 토마토를 함께 팔기도 했으며, 양치기 소년과 함께 양떼에게 풀을 먹이기도 했다. / 강기태씨 제공

    ―이번 여행 일정은 어떻습니까.

    "지난 6월 25일 한국을 떠나 터키에 왔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타고 왔고 트랙터는 한 한국 회사의 터키 지사에서 협찬받았습니다. 9월 말까지 터키 서부에서 동부까지 1만3000㎞쯤 횡단할 계획이고, 잠시 한국에 들어갔다가 중국 하얼빈에서 베이징까지 약 1만8000㎞를 여행할 예정이에요. 국도로 달리면 거리가 짧아지겠지만 주로 농촌을 다니기 때문에 무척 길어지고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시골로만 다니는 이유가 있나요.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트랙터로 여행을 하는 이유는 농촌을 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각국의 농촌을 체험하고 하동에 돌아가 농사를 지을 생각이거든요. 시골 길이 느리지만 훨씬 편하고 사람들도 따뜻하게 반겨줘서 여행 취지에도 맞습니다."

    교사 꿈 접고 트랙터 타다
    아버지 농사 짓는 것 보니
    죽어라 일해도 남는 게 없어…
    각국 농촌들 배우고 싶었죠
    우리 농업 살려야 하니까

    지금은 터키
    터키 東西횡단 1만3000㎞
    '형제의 나라'에서서 왔다고
    너무나 따뜻하게 맞아줘요
    함께 오이도 따고, 양도 치고…

    트랙터 끝내고 리어카 여행
    도보·자전거는 무동력인데
    트랙터는 기름 많이 먹어요
    네팔 등 실크로드 국가 갈땐
    내 발걸음으로 해내고 싶다

    "세상은 혼자가 아니다"
    터키 분들이 건네주는
    물 한잔, 과일 한쪽이 모여
    여행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도전, 계속할 겁니다

    ―왜 하필 트랙터입니까.

    "대학 4학년 때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체 게바라가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여행한 것을 소재로 만든 영화인데, 그 모습이 무척 멋져서 '내 20대는 여행을 하면서 보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워낙 '나만의 방식'을 좋아하는 데다가 농부의 아들이니까 경운기나 트랙터로 여행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경운기로 남미 종단을 할 계획을 세웠지만 여러 사정상 실행에 옮길 수 없었습니다. 그 후에 생각해 낸 것이 트랙터였지요."

    터키인들은‘형제의 나라’에서 온 청년 강기태(맨 오른쪽)를 항상 반갑게 맞아주었다. 보는 사람마다 먹을 것을 권하며 그를 환영했다.

    ―국내 여행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트랙터와 여행 경비를 협찬받았던데요.

    "40쪽짜리 여행계획서를 만들어 전국 농기계 회사와 농기계학과 교수들께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제 계획을 기특하게 생각한 교수님들과 회사들이 나타나면서 스폰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트랙터로 여행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고 시속이 30㎞밖에 되지 않습니다. 언덕에서는 10㎞ 미만으로 떨어지죠. 그래도 경운기보다는 더 안전하고 빠릅니다. 경운기로는 도시 지역 여행하기가 너무 힘들고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금 농촌에서는 경운기보다 트랙터가 훨씬 더 많이 쓰이기도 합니다."

    ―외국 농촌을 여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별로 없어요. 가장 힘든 건 말이 안 통하는 것이죠. 한국에서 터키어로 된 전단을 1000장가량 인쇄해 왔습니다. 왜 이런 여행을 하는지, 앞으로 어디까지 갈 것인지를 설명하는 전단이죠. 운 좋게도 터키에서만 20곳 넘는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태극기와 터키 국기를 달고 낯선 동네에 가면 사람들이 다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줍니다."

    ―숙식은 어떻게 해결합니까.

    "보통 저렴한 모텔에 묵지만 숙소가 없는 곳에서는 텐트를 치고 밥과 잠을 해결합니다. 우리나라 여행할 때는 거의 매일 텐트에서 잤고, 너무 추우면 찜질방 같은 곳에서 신세를 졌지요. 터키 시골 사람들의 인심이 좋아서 차를 하루에 열 잔 넘게 얻어 마시고 밥도 자주 대접받습니다. 이곳은 밤 9시가 돼야 해가 저물기 때문에 아침 10시부터 밤 9시까지는 계속 여행을 합니다."

    ―현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터키 시골엔 동양인이 거의 없습니다. 다른 인종이 시골에 왔다는 것에 일단 놀라고 트랙터로 이 넓은 대륙을 횡단한다는 말을 들으면 놀라 자빠집니다. 이들로부터 항상 '왜 이런 여행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나는 농부의 아들이고 농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이기 때문에 당신들의 농촌을 보기 위해 여행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기 때문에 더 친절합니다."

    ―왜 농부가 되기로 했습니까.

    최고 시속 30㎞ 밖에 안 나오는 트랙터 여행이 지루할 법 한데도 강기태는 "사람들을 만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하동에서 벼농사를 하십니다. 그런데 농사는 돈이 안 됩니다. 일단 품앗이가 없어져서 일꾼을 사야 하는데 일꾼 삯도 비싸지만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한 해 농사지어서 농기계 한 대 사면 남는 게 없습니다. 농약과 비료값은 계속 치솟고 쌀값은 폭락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우리 농업이 무너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저에게 농사를 물려주지 않으려 하십니다. 저는 세계여행이 끝나면 고향에 가서 제 이름을 붙인 농업회사를 차릴 생각입니다. 농사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지을 수 있는지 공부도 더 하고 싶습니다. 교사의 꿈은 접었지만 이미 대학생 상대로 '도전'에 대한 강연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교편을 잡고 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수석 졸업생이 교사를 포기했으니 학교에서 실망이 컸겠군요.

    "제가 트랙터 여행을 한다니까 교수님들이 무척 서운해 하시고 답답해 하셨죠. 임용고사 합격률이 떨어지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자랑스럽다'는 문자를 보내주십니다. '자랑스러운 교원대 동문상' 후보에도 올려주시고요."

    그의 트랙터엔 짐을 실은 작은 컨테이너가 달려 있고 온갖 후원 회사의 스티커와 자선 단체 스티커들이 붙어 있다. 국내 여행 때 그는 '트랙터 티셔츠'를 만들어 판 수익금 130만원을 월드비전에 기부했다. 이번에도 티셔츠를 만들어서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온라인 판매를 할 계획이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엽서 신청'을 받을 계획도 있다. 누구나 1만원만 내고 신청을 하면 강씨가 터키에서 산 그림엽서에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신청인이 원하는 상대에게 보내준다. 강씨는 "이번 여행 수익금도 자선 단체에 기부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여행 때는 지방마다 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했었지요.

    "이곳에서는 봉사라기보다 체험을 많이 하고 있어요. 지금 터키는 밀 농사를 마치고 작물 농사를 하는 중이에요. 트랙터를 타고 가다가 오이밭을 지나가면 터키인들과 함께 오이를 땁니다. 여기는 양 치는 소년들이 많아서 그 아이들에게서 양 치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터키 사람들과 함께 토마토를 팔기도 했고요. 그런 소소한 일들이 매일 일어납니다. 한국에서 태극문양 부채와 책갈피를 잔뜩 가져 와서 이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고 있습니다."

    ―지루하거나 외롭지 않습니까.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다음 달엔 터키 농림부 장관을 만날 약속도 했습니다. 터키 언론과 인터뷰할 때 '최근 한·터키 FTA가 체결됐기 때문에 터키 청년 농부들과 농림부 장관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거든요. 그랬더니 장관실로부터 만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워낙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관심이 많았나요.

    "다른 사람의 길을 존중하지만 저만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두 불가능하다, 위험하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대학 시절엔 방학 때마다 자전거로 국내 여행을 했고, 3학년 때는 동남아, 4학년 때는 중남미를 배낭여행했습니다. 그런 여행을 통해서 비용을 최소화하는 법, 밖에서 살아남기, 사람들과 관계 맺기 같은 것을 배웠습니다."

    ―중국까지 여행을 마친 뒤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중국 트랙터 여행은 베이징에서 끝낼 계획이고, 그다음부터는 리어카를 끌고 네팔까지 갈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트랙터 여행을 하면서 늘 마음에 걸리는 게 걷거나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처럼 무동력 여행자가 많은 데 트랙터는 연비가 L당 3~5㎞ 정도로 기름을 많이 먹는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터키 기름값이 L당 2800원 정도로 무척 비싼 편입니다. 리어카에 짐을 싣고 네팔까지 가면 그다음부터는 자전거나 오토바이, 말, 낙타처럼 20대들이 꿈꿔 볼 만한 여행 수단으로 네팔·인도·파키스탄·이란·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을 여행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실크로드 국가들을 모두 가보게 되는 셈이죠. 여행기간은 1년 반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트랙터에 이어 리어카입니까.

    "취사 도구와 캠핑 도구를 싣고 다녀야 하기도 하고, 제 발걸음으로 광활한 중국 대륙을 걸어서 여행하고픈 생각도 있습니다. 그동안 기름을 많이 쓴 것에 대한 '속죄' 의미도 있고요."

    ―트랙터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깨닫고 있습니까.

    "세상은 절대 혼자 살아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항상 느낍니다. 전에는 내가 공부 잘하거나 잘나거나 능력이 뛰어나면 혼자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어떤 일을 하든지 서로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또 항상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저는 터키에서 만난 사람들의 친절과 호의 덕분에 제 꿈을 이뤄나가고 있습니다. 나 혼자 잘나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이분들이 건네주는 물 한 잔, 과일 한 쪽 같은 작고 소소한 것들이 모여서 나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터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면 만나서 막걸리라도 한잔 건네야 할 것 같다. 그의 원동력에 소소한 힘을 보태주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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