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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공부/이동현 지음/280쪽·1만4000원·필로소픽

by 달빛아래서 2012. 8. 26.

 

치매걸린 어머니 정신 잃기전 아들에 목돈을…

기사입력 2012-08-25 03:00:00 기사수정 2012-08-25 22:47:27

 

◇어머니 공부/이동현 지음/280쪽·1만4000원·필로소픽

어머니와 산책하는 저자. 저자는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후에야 많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저자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찍은 사진(작은 사진). 왼쪽부터 저자, 저자의 동생, 어머니. 저자는 당시 어머니가 말이 별로 없고 온화했지만 생활력은 강했다고 회고했다. 필로소픽 제공

치매에 걸린 팔순 노모를 홀로 모시는 50대 아들 이야기. 눈물 콧물 쏙 빼놓을 만큼 절절한 사연이 빼곡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렇지 않다. 이 책의 미덕은 감정의 과잉이 없다는 것이다.

소규모 무역업에 종사하는 저자는 결혼하지 않고 부모와 살았다. 어머니는 평생 자신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봉양했고, 들쑥날쑥한 직장생활을 이어간 남편 대신 하숙으로 가계를 꾸려왔다. 수많은 하숙생들의 밥상을 차렸고 빨래를 했다. 마흔을 훌쩍 뛰어넘은 아들의 밥상을 챙기는 것도 어머니의 몫이었다.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항상 온화했던 어머니.

저자는 담담히 말한다. “그런 어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왔다.”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는 것처럼 당연히 어머니를 간병했고, 매일매일 간병기를 쓰기 시작했다.

“저녁에 어머니 방에 들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 팔다리를 주물러드렸다.”(2005년 10월 20일)

“어머니가 오늘이 내 생일인 것을 생전 처음으로 잊어버렸다. 이후 어머니는 두 번 다시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했다.”(2007년 3월 6일)

“어머니는 말수가 없는 자식이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 일부러 치매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평생 모자간에 했던 대화량보다 더 많은 말을 어머니와 주고받았다.”(2009년 10월 12일)

저자는 어머니를 위해 서울 아현동의 낡은 집을 살기 편하게 고쳤다. 어머니의 치매가 심해지자 매일 자신의 사무실로 함께 출퇴근하며 밀착 간병을 했다.

어머니의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겠다고 결심한 저자는 어머니와 함께 당신이 다녔던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어머니의 학적부를 보니 ‘공부 안 해도 시험만 보면 이상하게 아는 것만 나왔다’는 어머니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한 귀로 흘렸던 어머니의 옛이야기가 학적부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공부 잘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했던 소녀. 그런 어머니가 후반기 인생을 하숙집 부엌데기로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저자는 치매 어머니를 통해 인생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됐다고 적었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면 어머니, 그리고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삶을 그토록 면밀히 관찰하지 않았을 테니, 인생에 대한 깨달음도 얻지 못했으리라는 것. 즉 그에게 어머니 봉양은 어머니 공부, 즉 인생 공부였던 것이다.

책은 치매 환자도 보통 사람처럼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저자는 어머니를 방 안에 홀로 두지 않고, 어머니가 평생 다녔을 장터를 여전히 다니게 했다. 함께 연극이나 전시를 관람했고 여행도 다녔다. 적절히 한방과 양방 치료도 곁들였다. 덕분에 어머니는 일반 노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편안히 살고 있다고 한다.

치매 어머니는 정신을 완전히 잃기 전 아들에게 “요양원에 보내달라”고 애원했다. 몰래 모아둔 목돈을 아들 통장으로 보내놓기도 했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에 아들은 울었다. 절절한 속사정이야 왜 없겠는가.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척 밝다. 일부러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저자도, 그리고 어머니도 치매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생로병사의 한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때론 아이가 된 어머니의 귀여운 행동에 피식 웃음도 나온다. 한국사가 그대로 반영된 팔순 부모의 삶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blog_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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