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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가 추진하려는 ‘서울프로세스’의 핵심은 한국이 주도적으로 동북아판 헬싱키프로세스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이 중간국 또는 중견국(middle power)으로서 그러한 평화프로세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데 참고가 될 좋은 본보기가 하나 있다. 서구에서 근대 외교사의 시발점으로 간주하는 비엔나협조체제가 그것이다.
비엔나체제는 열강이 19세기 초 나폴레옹전쟁을 마무리하고 출범시킨 국제평화체제인데 당시 강화회의가 상대적으로 약소국이었던 오스트리아의 빈(비엔나)에서 열린 것은 이 나라 재상 메테르니히 외교의 개가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200여 년 전 당시나 지금이나 유럽의 주요 4강은 영국 러시아 독일(프러시아) 프랑스다.
현재 동북아의 4강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사실은, 제5국(중간국)으로서 한국이 오스트리아가 처했던 입지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오스트리아 외교는 4강이 서로 견제하는 상황에서 중간국으로서 자국의 입지를 최대한 살린 모범사례라고 할 수 있다.
책임있는 중간국가(middle power)의 기능을 다 하려면
중간국으로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관련해서는 과거 노무현정부 때 ‘동북아균형자론’ 논란이 있었는데 박근혜정부가 유사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면 외교 국정과제를 추진함에 있어 다음의 역사적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원래 ‘균형자’라는 말은 18~19세기 영국의 유럽대륙국 정책의 하나로 현상유지 정책이라고도 하는데, 독일계의 합스부르크(Habsburg)가와 프랑스계의 부르봉(Bourbon)가의 세력 다툼 사이에 서 힘이 약한 쪽을 지원하는 정책을 취한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 후 나폴레옹전쟁 때는 영국이 5국체제의 현상유지를 택함으로써 프랑스를 존립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한국은 국제법상 미국의 군사동맹국으로, 원초적으로 ‘균형자’의 자격이 없기 때문에 굳이 한국의 중간국 역할을 강조하자면 ‘완충역할(buffer zone)’이나 ‘비스마르크’식 ‘진정한 중재자(honest broker)’가 더 적절한 용어이다. 완충 역할이나 중재자 역할은 동맹 여부에 관계없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구상하는 ‘서울프로세스’는 중간국으로서의 한국이 ‘진정한 중재자’역을 자임할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예컨대, 한·중·일의 특수 관계에서 또 다른 형태의 ‘한국 역할론’이 가능하다. 중국과 일본이 동북아에서 패권경쟁을 하는 국가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국은 전통적인 중국의 유교문화권 국가로서 중국으로부터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같은 쓰라린 경험은 겪지 않았으므로 중국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고 일본은 미국을 매개로 우리와 군사적으로도 연계돼 있으나 대일감정 등의 반일 요소가 있어 한국이야말로 유사시 '진정한 중재자'(honest broker)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캐나다 모델’에서 우리 외교의 지향점을 찾을 수 있다. 캐나다는 미국의 동맹국이고 특히 국경지대는 미국과 생활권역이 중복되기도 하지만(혹자는 미국의 한개 주로 착각함), 대외관계에서는 때로는 미국에 쓴 소리도 하고 때로는 독자적인 외교행보를 보임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평화애호국’으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구축하고 있는바, 인구나 잠재력 면에서 캐나다에 못지않은 한국이 그런 역할을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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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을 방문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뉴욕행 전용기 내에서 수행원 및 기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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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프로세스가 헬싱키프로세스와 같은 점, 다른 점
‘서울프로세스’는 요컨대, 유럽의 '헬싱키프로세스'를 한반도 평화모델로 원용해 보자는 것인데 이에 관해서는 이미 학계에서 오래전부터 논의돼 왔었고 우리 외교통상부도 2001년 ‘한국-OSCE 회의’를 통해 조심스럽게 그 실현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헬싱키프로세스’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협의(狹義)는 1973년 7월 3일부터 닷새간의 1단계 본회담(준비회의), 같은 해 9월 18일부터 1975년 7월 21일까지의 2단계 본회담, 1975년 8월 1일의 마무리 정상회담 등 3단계의 과정을 이른다. 또 광의(廣義)에서는 2005년 7월 폴란드 외무장관(아담 로트펠드)의 비엔나 OSCE회의 발제 ‘헬싱키 프로세스 30년 회고’(30 years of the Helsinki Process)처럼 헬싱키 최종결의(Helsinki Final Act) 완성 후 각종 후속회의를 통해 회원국들의 의무이행 상황 점검 등 유럽지역의 안보협력과정을 총칭한다. 한국이 추구하는 ‘서울프로세스’는 물론 후자를 말한다.
헬싱키프로세스의 산파역을 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는 1995년 1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로 개칭, 상설 국제기구화되면서 1999년의 비엔나 문서(Vienna Document)에 이르기까지 4개의 새로운 협약(문서)을 체결하여 각종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들을 강화해 왔다. 이와 같은 일련의 헬싱키프로세스 전개과정을 살펴볼 때 우리는 한반도 안보와 관련, 다음과 같은 시사점과 교훈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첫째, 먼저 군사적 신뢰구축 이전에 정치적 신뢰구축이 어떤 형태로든 선행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1973년 헬싱키프로세스가 시작된 것은 그 이전의 미-소 정상회담이나 동서독 기본조약 등 정치적 해빙무드가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둘째, 군사적 신뢰구축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구속력이 있는 강력한 조치들을 합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초기에는 참여국의 자발적인 시행을 권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경우에도 참여국의 의무적인 신뢰구축조치는 구속력이 없는 헬싱키 최종결의상의 군사적 신뢰구축조치가 시행된 후 10년이 지나서야 스톡홀름협약(1986년)에서 감시 검증의 방법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행하게 되었다.
끝으로,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 회원국 사이에 이견으로 협상이 교착상태에 들 때는 전체 35개 협상 참여국 가운데 3분의 1에 가까운 12개국의 비동맹 중립 성향의 유럽국들이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우리네 속담을 연상시키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의 물꼬부터 먼저 트길
이 같은 헬싱키프로세스의 시사점과 교훈에 비추어 북핵문제 해결을 포함해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구현하기 위한 ‘서울프로세스’(동북아 지역의 다자안보협력)의 향방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먼저 ‘정치적 신뢰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남북간의 신뢰구축 못지않게 북미, 북일간의 관계 정상화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특히 한국이 중국과 러시아와 이미 오래전에 국교정상화를 이룬 것과 대조된다. 정치적 신뢰구축의 가장 핵심 사안은 외교관계 정상화이기 때문이다.
둘째, ‘군사적 신뢰구축’과 관련, 헬싱키선언에서처럼 군사훈련의 사전통보, 참관요청 등 군사적 투명성을 높이는 사전통제 장치는 초기 시행과정에서는 상대방의 ‘선의의 협력’을 구하다가 점진적으로 구속력 있는 감시 검증의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요컨대, 남북간의 군사적 신뢰구축조치(CBMs)도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나 장치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끝으로 헬싱키 프로세스의 교훈은 양자 모드 보다는 다자 모드가 유용했다는 점이다. 즉, 양자형식의 MBFR협상이 실패하고 다자방식의 유럽안보협력회의(OSCE)가 성공한 것을 말한다. 후자의 경우, 헬싱키 회의 당시 유럽국의 거의 대다수가 포함된 35개국이 참여하고 특히, 이 중 12국이 동서 양 진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비동맹 중립국이었다는 사실은 이 지역에서 헬싱키프로세스를 추구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전체 회의 참여국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중립성향 국가들이 NATO(16국)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 7국) 동맹국들의 의견 대립시 적극적인 중재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아시아판 또는 동북아판 헬싱키 프로세스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할 사안이다. 따라서 이 지역 다자안보협력회의도 가능한 참여국의 상당수는 역내 안보현안에 중립성향을 갖는 국가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글/김경수 명지대 국제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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