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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황혼

암 환자 숨져갈 때 아내와 딸은 금고번호를 독촉하고

by 달빛아래서 2014.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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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 환자 숨져갈 때 아내와 딸은 금고번호를 독촉하고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E-mail : dodoyun@hanmail.net 
    ‘500만원’이라고 들었을 때부터 이거 사건 되겠다 싶었다. 피를 나눈 형제들이 아버지 통장에 남겨진 달랑 50만원 때문에 칼부림을 냈다고 신문에 나는 세상인데, 일남 할아버지에게 남겨진 500만원은 그 50만원의 열 배였다.

    폐암환자였던 일남 할아버지는 독거노인이었다. 나이 지긋한 사촌동생이 호스피스 입원 수속부터 장례까지 도맡아 했다. 화장(火葬)을 해야 한다고 축 처진 걸음으로 사망진단서를 떼러 온 사촌동생에게 “외로운 분한테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위로를 건넸다. 그런데 일남 할아버지가 떠나고 딱 6개월 만에 할아버지의 전처(前妻)와 아들이 나타났다. 사실 나는 병문안 온 할아버지의 옆집 아주머니한테 들어서 일남 할아버지의 전처와 아들이 대구에 살고 있다는 것을 그전부터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위독하다는 소식을 그 아주머니를 통해서 전달했지만 감감 무소식이었다. 오히려 아주머니는 전처에게 호된 욕까지 얻어먹었다고 시큰둥했다. 일남 할아버지도 아들이 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항상 아니라고만 대답했다. 나는 의학적인 내용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사실을 경과 기록지에 꼼꼼히 써 두었다. 행여 나중이라도 일남 할아버지의 피붙이가 찾아와서 왜 연락을 하지 않았냐고 따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쓸 수는 없었다. 일남 할아버지는 막무가내로 욕설을 퍼붓다가도 초콜렛 한 봉지씩 우리 호주머니에 넣어주는 환자였다. 나는 웬일인지 마지막에 아들을 그리워했다라고 남겨드리고 싶었다. 망설임 끝에 ‘환자는 아들을 보고 싶어 한다’라고 경과기록지에 쓰고야 말았다.

    일남 할아버지한테는 풀빵 장사하던 작은 가게 터가 있었다. 전처와 아들이 사촌 동생이 마음대로 처분해서 꿀꺽했다는 것을 알고는 경찰에 사건을 접수 했다. 그들은 의무 기록지를 복사하기 위해서 왔다. 그들이 다녀간 뒤에 경찰도 와서 일남할아버지의 일을 소상히 묻고 갔다. 나는 누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 500만원 때문에 일남 할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 보다 돌아가신 후에 방문객이 더 많다는 것은 알았다. 이런 흔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은 ‘내가 호스피스 의사를 해보니까 사전의료지시서나 유언은 문서로 남기는 것이 좋겠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암 환자 숨져갈 때 아내와 딸은 금고번호를 독촉하고
일남 할아버지에 비해 주찬이 할아버지(74세)는 인생 마무리가 깔끔했다. 전직(前職)세무 공무원이었던 탓인지는 모르지만, 말기 췌장암이라는 것을 안 후 꼼꼼하게 일을 척척 진행했다. 적극적인 치료보다는 편안한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했고, 유산도 아들과 딸에게 정확하게 나누어 주었다. 힘이 더 떨어지기 전에 할머니하고 맛있게 먹었던 순두부찌개 식당도 마지막으로 다시 가봤다. 서류로는 너무도 완벽해서 분쟁의 여지가 없어보였다. 웰다잉(well-dying) 필수조건인 ‘사전의료지시서와 유언남기기’의 확실한 본보기였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준 그 다음부터 딸은 병원에 발길을 끊었다. 자주 들러서 아버지를 돌봐주던 착한 딸이었는데, 병원에 오지 않는 오빠에 비해 자신의 몫이 초라하자 마음이 변한 것이다.

마지막에 할아버지가 호흡이 가빠 올 때, 할머니와 딸은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금고번호를 소리 높여 물었다.
“아버지, 몇 번이예요?”
“여보, 몇 번이오?”
병실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 씁쓸한 소리를 함께 들었다. 할아버지의 임종실에는 상속을 넉넉하게 받은 아들과 입원하고 처음 온 맏며느리가 있었다.
유명한 모기업인도 생전에 변호사를 통해서 얼마나 인생정리를 잘 했을까? 그러나 그가 떠난 후에 자식들의 재산과 감정의 대립은 제사까지 따로 지낼 정도이다.

살면서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세심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정리한 서류상의 마무리는 남은 자들에게 원망과 아쉬움만 남긴다. 유언을 작성하지 않은 일남할아버지와 마찬가지인 셈이다. 내가 떠난 50년 후 내가 뿌린 씨앗 때문에 작은 전쟁이 일어난다면 비참한 일일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했지만 시간은 그저 흐를 뿐이다. 재산을 정리하는 일이 아닌 감정을 정리해주는 일은 인간이 살아 있을 때만이 제대로 할 수 있다.
살아오면서 불편한 마음들이 마지막이 오면 달라질 것으로 상상한다. 시간은 다만 자신의 과오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창문일 뿐이다. 사랑과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감정의 정리는 인생의 막바지에는 오히려 힘이 든다. 벼락치기가 되지 않는다. 죽음은 항상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고, 마지막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혀를 움직일 수 있는 힘조차 없어지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과 그 후가 어떨까?’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세대로 이어지는 관계와 인연이 우리의 삶을 이루어가는 숨은 힘이라면 남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담은 유언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죽는 것도 힘들고 억울한데 떠나는 사람이 남는 사람을 배려하는 일까지 해야 되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 많은 사람이 인생의 선배가 아니라 먼저 떠나는 사람이 인생의 선배이다. 후배를 배려하는 여유를 가질 줄 아는 것이 내가 남긴 재산을 내가 떠난 후에도 잘 지키는 방법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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