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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황혼

인생 2막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

by 달빛아래서 2016. 8. 19.

인생2막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

카테고리 : 은퇴교실 | 작성자 : 백만기

사람들이 돈을 모으고 가족을 이루며 친구를 사귀고 하는 것이 어쩌면 다 죽음에 대비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다면 구태여 그럴 필요도 없으리라. 법정 스님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물론 범인에게는 그런 관계가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것이 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도 짐을 더는 한 가지 방법이다.

 

몇 년 전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공동으로 8만 시간 디자인 공모전을 한 일이 있다. 나는 평소의 생각을 적어 응모했는데 운좋게 대상을 받았다. 여기서 8만 시간이란 60세에 은퇴한 후 평균수명인 80세까지 살 경우 20년을 자기에게 온전히 주어진 시간으로 환산한 것이다. 굳이 시간으로 표현한 것은 그만큼 시간관리를 잘 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누구나 다 8만 시간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그보다 길겠지만 또 다른 사람은 그보다 짧을 수도 있다. 더구나 남의 도움 없이 혼자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건강수명은 70세에 불과하다. 그것을 기준으로 하면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반으로 줄어든다. 즉 4만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야 말로 주어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인생2막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시간은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 돈이 과연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그 시간의 효용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태리 수학자 파레토가 소득의 분포를 조사했는데 소득 상위 20%의 사람이 전체 소득의 80%를 점했다. 양적으로 작은 항목의 가치가 다른 큰 항목의 가치보다 월등히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파레토의 법칙이라고 한다. 다른 분야에서도 파레토의 법칙을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지난 주에 해야 할 일이 10가지 있었는데 그중 2가지 밖에 하지 못했다고 치자.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2가지가 해야 할 일 10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 1,2위였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마 20%을 했을 때의 만족감이 하지 못한 나머지 80%의 그것보다 클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 모든 일에 매달리지 말고 중요한 일 몇 가지에 치중할 필요가 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좋아하는 20%의 사람을 만났을 때의 만족감이 나머지 80%의 사람을 만났을 때의 그것보다 크다면 나머지 80% 사람과의 교제를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80%의 사람들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염려했다가는 자칫하면 20%의 사람과의 관계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십명의 그저그런 친구보다는 서너명의 진실한 친구를 사귀는 편이 훨씬 낫다.

 

얼마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갤럽이 각국 남녀 1000명에게 “당신이 어려울 때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습니까?” 란 설문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 같은 질문에 한국인 10명 중 7명만이 긍정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였다.

 

긍정적인 답변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스위스(95.8%), 덴마크(95.0%), 독일(93.6%), 호주(92.0%) 등이었고, 미국(90.0%)과 일본(88.5%)의 긍정적 답변 비율도 36개국 평균(88%)보다 높았다. OECD는 “주변 사람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반면, 사회적 네트워크가 강한 나라에서는 일자리도 쉽게 찾고 건강 상태도 더 좋았다”고 봤다.

 

분당에서 대안문화공간을 운영할 때다. 판화가 L씨의 전시를 유치하고자 충북 제천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하려고 전화를 했었다. 그는 장마를 앞두고 있어 지금 농사일로 바쁘니 다음에 만나자고 했다. 판화작업을 하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마찬가지 대답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가을철이 왔다. 이번에는 그에게 전화를 하지않고 직접 그곳으로 향했다. 마을에 도착하여 지금 동네어귀에 있다고 전화하니 그제서야 집으로 안내를 했다. 그의 아내가 만든 한과와 차를 한잔 하며 오래 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그가 두번이나 거절했던 것이 미안해서 그런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얼마 안 되는 생을 살았지만 그동안 맺은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가급적 새로운 인간관계는 맺지 않으려고 한단다. 그의 말에 나도 공감을 했다. 은퇴 후에 사람을 새로 사귀기는 커녕 기왕에 알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조사에 가보면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혼주나 상주 같은 당사자는 그 사람들을 보고 자신의 인간관계가 넓음을 과시할지 모르지만 그건 착각이다. 과연 그 사람들 중 몇이나 자신이 어려울 때 곁을 지켜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갤럽의 조사에서 보듯이 당사자들도 그런 것이 허수임을 이미 알고있는 듯하다.

 

인생2막에서는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인 그런 사람보다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을 한정해서 깊이 관계를 맺는 것이 좋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않기 때문이다. 만났을 때마다 에너지를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과 있을 때는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상수다.

 

지금까지 남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면 인생2막은 온전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한때 세계 최고 부호의 자리에 올랐던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은 남들이 보기에 최고의 인생을 살았지만 그는 죽을 때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후회했다. 그의 옆에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암만 돈이 많으면 무엇하겠는가? 워런 버핏도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친구라고 했다.

 

친구란 어떤 사람인가? 여기 좋은 예가 있다. 홀리는 강압적이고 정서불안인 남편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남편은 실직 상태인데도 집안일조차 돕지 않았다. 아들은 겨우 한 살이었고 따로 아파트를 구할 돈도 없었다. 다행히 홀리에게는 에린이 있었다. 에린이 홀리의 얘기를 듣고 말했다. ‘짐을 싸서 우리 집으로 와.’ 홀리는 10년 전 그날 밤을 회상했다. ‘에린도 세 아이를 키우고 있었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았어요.’

 

홀리는 에린에게 지나친 부담을 줄까 봐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에린은 홀리를 가족처럼 챙겼고 그들의 관계는 전혀 틀어지지 않았다. 홀리는 인생의 가장 암울한 순간에 한 마디 비난이나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홀리는 친구를 이렇게 정의한다. ‘친구는 나에게 친구가 필요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어떻게 필요한지도 아는 사람, 즉 정확히 어떻게 나를 위로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인생2막은 마무리를 준비하며 사람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는 시기다. 자신이 생을 마감할 때 곁에 있어줄 사람이 주위에 몇이나 되는지 손꼽아 보라.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진정한 친구를 얻고 싶다면 당신이 먼저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친구는 인생 최고의 축복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축복을 위해 너무 적은 노력을 기울인다.

 

백만기

 

사진 브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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