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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 사람

아삭한 단맛이 안긴 15억원… 20代 '파프리카 남매' 비결은

by 달빛아래서 2015. 1. 3.

[Why] 아삭한 단맛이 안긴 15억원… 20代 '파프리카 남매' 비결은

  • 영광=채성진 기자

     

  • 입력 : 2012.12.22 02:52 | 수정 : 2012.12.23 07:33

    취업난, 농업에 답 있었다
    패션 디자이너 꿈꾸던 누나, 부친 권유로 농수산대 입학
    "스펙 쌓으려고 헤매기보다 전문지식 갖춰 경영하면 농업만큼 확실한 분야 없죠"

    아버지의 30년 가업 잇기로
    이사인 누나, 재배·생산 담당… 사원인 동생, 유통·판촉 맡아
    "평생 직업 고민했지만 할수록 가능성 크다고 느껴"

    전남 영광군 염산면 파프리카 농장. 바깥에선 영하의 찬바람이 불었지만 1만㎡(3000여평) 비닐하우스 안은 후끈했다. 어른 키만 한 묘목 3만3000주에 노랗고 빨간 파프리카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출하 준비로 바쁜 박민호(24)씨가 방금 딴 열매를 쓰윽 닦아 건넸다.

    "쬐깐한 게 참 맛나지요? 아삭아삭한 것이." 단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박씨 누나 지선(25)씨는 "저게 다 크면 5m를 넘는다"면서 "재배가 쉽고, 착과성(着果性)도 뛰어나 수확량이 많은 SC글로리 품종"이라고 했다.

    '프로 농사꾼'을 꿈꾸는 남매는 한국농수산대학 출신이다. 2009·2010년 채소학과를 졸업한 과 선후배 사이. 이들은 30년 동안 시설 채소를 재배한 아버지(박광춘·52)의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농장에선 영양성분이 혼합된 액체 비료를 방울방울 떨어뜨리는 양액(養液) 방식으로 고품질 파프리카를 키운다. 히트 펌프로 뽑아낸 지열을 활용하는 온수 파이프를 고랑마다 설치해 공기를 데우고, 자동 카트를 이용해 힘쓰는 일을 줄였다. 작년 매출은 15억원. 농장 '이사'인 지선씨는 재배와 생산을 책임지고, '사원'인 민호씨는 유통과 판로 구축을 맡았다.

    
	전남 영광군 염산면 파프리카 비닐하우스에서 ‘프로 농사꾼’을 꿈꾸는 박민호(왼쪽)·박지선 남매. “할수록 가능성이 큰 분야”라고 누나가 말하자 “제대로 농사 한번 지어보자”고 동생이 맞장구쳤다. / 채성진 기자
    전남 영광군 염산면 파프리카 비닐하우스에서 ‘프로 농사꾼’을 꿈꾸는 박민호(왼쪽)·박지선 남매. “할수록 가능성이 큰 분야”라고 누나가 말하자 “제대로 농사 한번 지어보자”고 동생이 맞장구쳤다. / 채성진 기자
    인문계 고교를 다니며 패션 쪽 일을 꿈꿨던 지선씨는 아버지 권유로 농수산대에 입학했다. 그는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고민 참 많이 했지만, 요즘은 하면 할수록 가능성이 큰 분야라고 느낀다"고 했다.

    2학년 때는 실습 나간 김제의 한 영농조합에서 파프리카 재배 기법을 제대로 배웠다. 졸업 후 농장일을 시작했을 땐 학교에서 배운 기술로 아버지의 '실전 영농 테크닉'에 맞서다 여러 번 부딪치기도 했다.

    "직업을 묻는 사람에게 '농업'이라고 하면 표정이 묘하게 변해요.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농업이냐. 더군다나 여자가', '밤낮 삽질하는 3D 업종 아니냐'며 비웃는 사람도 있어요. 농업 현장을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 같아요."

    시설 원예에 인생 승부를 건다는 민호씨는 농업고교와 농수산대로 일찌감치 진로를 정했다. 그는 "기초부터 확실히 배워 제대로 농사 한 번 지어보겠다"고 말했다. "'스펙' 준비한다고 일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애들 많아요. 살 떨리는 취업난을 겪으면서도 농사일만은 죽어도 못하겠다고 해요. 재배부터 마케팅, 유통까지 전문 지식을 갖추고 제대로 '경영'하면 이만큼 확실한 분야도 없어요. 수확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남매는 '젊은 영농인의 고민'을 슬그머니 비쳤다. "시골이라 문화생활 즐기기가 힘들고, 애인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앞으로 뭐 할까 머리 쥐어 싸맨 후배들에게 우리 학교를 추천해요."

    농수산대는 농수산 인재 육성을 내걸고 1997년 경기도 화성에 문을 열었다. 최근 졸업생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농가 평균 소득(6620만원)이 국내 매출 상위 100대 기업 직원의 평균 연봉(5700만원)보다 높아 화제가 됐다. 억대 소득을 올린 졸업생은 236명(17.5%)이고, 38명(2.5%)은 소득이 3억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수산대 기획조정팀 관계자는 "2학년 때 국내외 선진 농장과 어장에서 강도 높은 현장 실습을 받고, 3학년 때는 경영 기법과 유통·판로 관리 같은 전문 창업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학생들은 입학금과 수업료는 물론 기숙사비까지 국비로 지원받는다.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요즘 '실속파' 지원자들이 몰린다. 5년 전만 해도 2대1 정도였던 신입생 모집 경쟁률이 최근에는 5대1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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