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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원생활,온전한 시골사람이 되기 위하여

by 달빛아래서 2015. 10. 22.

전원생활,온전한 시골사람이 되기 위하여

약삭빠르지 못하고 어수룩한 사람을‘ 촌놈’이라고 하는데 꼭 나쁜 뜻으로만 쓰이는 것 같지는 않다. 손해를 볼망정 도리를 알고, 네 것 내 것 크게 따 지지 않고 잇속에 어두운 사람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제대로 된 촌놈을 보기 힘든 세상이 아닌가 싶다. 촌놈이 사라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도시와 시골의 거리가 짧아진 탓이 클 것이다. 글 전희식(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 사진 농민신문사 자료 사진

온전한 시골사람이 되기 위하여

사진 언젠가부터 도시와 시골의 거리를 시간으로 재기 시작했는데 그 거 리는 급속도로 짧아졌다. 지도상에는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도로가 좋지 않아 시간이 더 걸리면 먼 곳이 된다. 공간과 시간만이 거리를 규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시골이라 해도 생활 곳곳에 도시가 판을 치고 있다. 심리적인 거리는 제로인 경우다.

자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필자는 귀농하는 후배들에게 촌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웬만하면 도시 출입을 삼가고 도시적 정서와 도시적 사고, 도시적 습속과 빨리 멀어져야 성공적인 농촌 정착의 첫 고비를 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라는 것이다. 농촌생활은 스스로가 자연이 될 때 온전해지는 것 같다. 자연이 된다는 것은 생활이 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한 다. 철을 거스르고 살아가는 것은 자연이 아니다. 철을 거스르다보면 반자연적인 수단들이 대거 등장하게 마련이다. 농사란 자연과의 합 일이다. 겨울에는 옷을 여미고 웅크리며 춥게 살고, 여름에는 여름의 어원처럼 옷섶도 방문도 열고 사는 것이다. 자동차를 운행할 때도 냉 방기에 의존하기보다 창문을 활짝 열고 다닌다. 여름에는 땀을 흘리 며 사는 것이 철따라 사는 것이다.

생활제품에서부터 식·의·주를 점차 자연식으로 바꾸는 것이 자 연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인공적인 생활 수단들과 거리를 둬나가 야 한다. 두 손과 두 발, 어깨와 허리를 써서 밥벌이하는 비율을 높여 가야 한다. 인공적인 것은 편리하나 쓰레기를 남긴다. 물질적인 쓰레 기뿐 아니라 사람의 몸과 머릿속에 쓰레기를 남기슴 게 더 큰 문제다.

몸을 많이 쓰는 것은 자연으로 살아가는 기본이다. 에너지 중에서 가장 고귀한 에너지는 몸 에너지다. 몸 에너지를 잘 쓰면 건강도 얻 고 보람도 크다. 요즘은 에너지 위기 의식이 커지면서‘ 인간 동력’이라 하여 재미있는 연구들이 많다. 이렇게 자연과 밀접하게 살면 촌놈 이 된다. 자연은 사람을 각박하게 만들지 않는다. 너그럽게 한다. 조 급하지 않고 느리다. 물이 굽이굽이 흐르듯이, 바람이 재를 넘듯이 그렇게 살아가는 게 진정한 촌놈의 삶이다. 마음을 낮추는 삶이요, 한 해가 지나면 또 씨 뿌리는 봄이 온다는 믿음의 삶이다.

농촌 정서에 대한 이해 그렇게 촌놈이 되어야 비로소 농촌 사람들이 왜 보수적인지를 알게 된다. 왜 시골 사람들이 텃세를 부리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의 농촌이 보수적이니까 척박한 조건 속에서 여태 농업을 유지해온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농촌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시골 어르신들 대부분이 1960~1970년대에 신작로가 날 때 자기 네 땅 여러 평을 내놓았다. 동네에 버스가 들어오고 종점이 생길 때 도 그랬고, 마을회관을 지을 때도 그랬다. 봄가을로는 새참 한 그릇 도 얻어먹지 못하고 부역을 나가 등짐을 졌다. 부역을 나가서 신작 로도 고치고 학교 담장도 쌓았다. 냇가에 보를 막아 논에 물을 댈 때도 일당은커녕 막걸리 한 사발 나라에서 사주지 않았다. 그러니 시골로 귀농한 사람이 그 물로 농사짓고 그 길 위로 차를 몰고 다니 면 시골 사람들 눈에는 무임승차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외지인 에 대한 텃세나 배타성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을 회의 때 꼭 논리와 합리성으로 뭔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수군수군 귓속말이나 소문으로 민심이 먼저 정해진다. 이편인지 저 편인지 알 수? 없다. 딱 부러지게 말을 안 한다. 뭐라 의견을 물으 면“ 다들 하자는 대로 하지 뭐”라는 답변이 대부분이다. 왜 그런지 한 세월 지나서야 알았다.

우리 집에서 청소년들이 농사 체험교실을 할 때 동네 할머니를 강사로 모셔서 학생들 나이 때 어떻게 살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씀을 들을 때였다. 그 할머니는 열세 살에 시집을 왔는데 난리(한 국전쟁)가 났을 때 낮에는 큰아버지가 대장인 토벌대가 들이치고, 밤에는 빨치산이 된 외삼촌 부대가 내려왔는데 도랑에 피가 철철 흘러 발목까지 빠졌다고 했다. 그러니 무슨 말인들 똑 부러지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역사를 깔고 있는 게 지금의 시골이고 우리의 농촌이다. 정서의 밑바닥에 있는 침전물인 것이다.

모임에 참여하고 공동체 만들기 귀농해서 그 마을의 논과 밭을 빌려 서 농사를 지으면 동네와 쉽게 가까워진다. 논과 밭은 제각기 특색 이 있고 나름의 이력을 갖 는다. 땅에 대한 이해는 동 네 역사의 이해와 맞닿아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땅 은 빌려서 농사지으면 안 되고 적더라도 자기 땅을 가지라고 조언하는 사람 도 있다. 땅 만들기를 염두 에 둔 말일 것이다. 이 역시 딱 부러지는 해답은 없는 것 같다. 오직 자연스럽게 무리하지 말고 구름이 흐르듯이 순리대로 판단하면 될 것이다.

만나면 먼저 인사하고, 동네일을 내 일처럼 성의껏 하면 몇 배의 보답이 돌아온다는 것은 귀농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농 촌에서는 돈으로 따지지 못하는 일들이 참 많다. 계산이 하루 이틀 에 마무리되지도 않는다. 그러니 쉽게 섭섭해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대신 차곡차곡 정이 쌓여가는 걸 놓치지 않고 직시할 수 있으 면 좋다. 그리고 절대 남을 흉보면 안 된다.

그 고장의 농민회에 가입하면 좋은 어울림의 ?계가 맺어질 것이 다. 상대적으로 진취적인 농민들이 모여 있는 곳이 농민회다. 교회 나 성당을 나가도 그렇다. 한 식구 한 형제로 반긴다. 귀농인 모임을 만들고 작목반에 가입해도 좋다.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교육에 자 주 가도 사람 관계가 만들어지면서 정착에 도움이 된다.

요즘엔 사회적기업과 마을기업을 중심으로 마을만들기사업이 한창이다. 지역의 전통 자산과 귀농자의 능력이 잘 결합할 수 있는 영역이 농촌 공동체인 것 같다. 특히 작년 말에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이후로 여러 형태의 협동조합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활발하 다. 자신의 생활 기반을 다져나가는 동시에 지역의 충실한 역할자로 자리를 잡아야 할 것이다.

※ 6월호에는‘시골에서 벌어먹고 살기’가 이어집니다. 田
사진 전희식 씨는 1958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노동 운동가로 활동하 다가 1994년 선배의 권유로 전북 완주로 귀농했으며, 지금은 장수군 장계면의 직접 손보고 고친 집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자연농법과 생태학, 대체의학, 대안교육 등에 관심이 많다. 현재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귀농 생활을 담 은‘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의 이야기를 담은‘ 똥꽃’과‘엄마하고 나하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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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토지사랑모임카페
글쓴이 : 토지정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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