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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외인테리어

[스크랩] 500년 옛집 찾아 녹록지 않았던 집수리 이야기

by 달빛아래서 2016. 12. 23.


500년된 옛집 찾아 18개월 수리기간 동안 녹록지 않았던 이야기

 


경기도 이천, 너른 논을 앞에 둔 마을 길섶에 'ㄱ'자로 꺾어진 한옥집이 있다. 지어진 지 50년이 넘은 초가에 현대의 지혜를 더해 개조한 집. 18개월의 공사 끝에 마련한 한 부부의 살가운 주말주택을 만나본다.






"대문 밖으로도 빛이라곤 하나 없어요. 경기도 이천이면 서울에서 먼 곳도 아닌데 시골의 정취는 여전하죠. 이 집을 찾는 데만 5년, 고쳐 짓는 데만 꼬박 1년 반이 걸렸답니다."



↑ ↑ 우거진 풀숲에 자리한 구입 당시 구옥의 모습. 원래 초가였으나 지붕을 슬레이트로 교체해 사용하고 있었고, 실내의 매우 낮은 천장과 부실한 기둥은 리모델링이 시급했다.





전씨 부부가 5년을 헤맨 끝에 마련한 주말주택. 남들처럼 대지를 마련해 쉽게 집을 지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그녀가 그동안 살아온 삶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전씨는 서울 이태원에서 앤틱숍을 운영하고 있다. 서양풍 앤틱숍이 즐비한 거리에서 10년 넘게 유일한, 한국 전통숍이다. 고 미술품과 민예품 등 사연 있는 옛 물건들을 수집하고, 또 실생활에 접목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그런 그녀가 새 집을 짓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새 집은 사람과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죠. 또 새 물건이 헌 집에 있는 것도 어울리지 않고요. 옛 물건들을 곁에 두고 사는 제가, 옛날 집을 찾겠다고 생각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어요. 하지만 시골의 빈 집 구하는 일이 정말 쉽지만은 않더군요."

서울에서 반경 100㎞ 이내의 거리, 기존 이웃집들과의 적당한 간격, 천장이 낮아 작고 아담한 집. 이 세 가지가 그녀가 세운 원칙이었다.

↑ 01 지붕은 기와로 교체하고 기둥을 보수했다. 하중을 더 잡아주기 위해 철제로 새 기둥을 세우고, 겉은 목재를 에워싸 이질감을 없앴다.

↑ 02 철거 후 집 안에서 본 뒤뜰 풍경.

↑ 03 살창이 있던 부엌 자리.

↑ ↑ 04 내외부 마감을 하기 직전의 모습.

↑ 05 매쉬 틀에 돌을 부어 담을 만들었다.


근 60년 세월을 겪은 낡은 시골집. 원래 초가였던 이 집은 새마을 사업 당시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고, 그마저도 낡아 천장에 난 구멍으로 하늘이 다 보였다. 마당 한 켠에 딸린 부속채는 서 있다 하기도 민망할 정도에, 마당의 풀숲은 허리춤에 닿았다. 그래도 그녀는 이 집이 궁금했다. 한적한 동네 분위기와 집 앞 너른 마당, 무엇보다 반자를 떼어낸 후 발견한 서까래는 그녀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고, 남편도 그녀와 뜻이 같았다.

철거물을 가득 실은 25톤 트럭이 떠나면서, 부부는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슬레이트 지붕이 사라진 자리에는 서까래가 간신히 하늘을 이고 있었다. 행여 많은 비가 올까 지붕 먼저 서둘러 얹어야 했다. 새 나무로 구조를 다시 엮고, 흙과 방수시트 위에 경랑기와를 올렸다. 전통 토기와를 원했지만, 그 하중을 집이 받쳐줄 리는 만무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부 미장도 관건이었다. 서까래의 찌든 때, 특히 부엌 천장의 그을음들을 벗기는 데만 꼬박 열흘이 걸렸다.

인부들도 두 손 놓고 줄행랑을 치는 통에, 남편이 직접 그라인더를 들기도 했다. 무너진 흙을 메우는 일은 더 어려웠다. 결국 대궐과 절을 전문으로 하는 한옥 문화재 기능사 4명이 현장을 찾았다. 그들은 20일에 걸쳐 서까래 천장과 외벽의 회 마감까지 말끔하게 끝냈다. 인건비가 높고 공사기간도 길었지만, 2년이 흐른 지금도 어느 한 곳 금 간 데 없는 회벽을 자랑한다.

↑ 01 통창을 통해 액자식으로 보이는 후정.

↑ 02 현대식 욕실. 샤워부스를 설치하고 방수에 만전을 기했다.


사람을 기다리는 집, 사람이 쉴 수 있는 집


구옥에 가장 문제점이었던 단열도 손보았다. 집은 원래 싸리로 외를 엮어 안팎으로 진흙을 이겨 바른 벽체였다. 내부 천장과 지붕 사이에 공기층을 두고, 흙벽을 보수하고 안쪽에 단열재를 덧댔다. 원래의 벽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두께 3㎜의 얇은 고효율 단열재를 선택했다. 간혹 황토벽돌을 새로 조적하거나, 내부에 두꺼운 스티로폼을 입혀 집의 원형을 망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부부가 개조 시 늘 경계했던 부분이다.

내부가 바뀌는 틈틈이 마당도 변해갔다. 앞마당의 수풀들을 치우고, 꼭 필요한 나무들만 경계를 따라 심었다. 매화나무와 감나무, 대나무들을 어우러지게 심었지만, 집을 위세로 누를만한 키 큰 나무는 없다. 게다가 한옥 마당에서 흔히 보는 소나무도 두지 않았다.

"고급 수종의 나무를 심고 비싼 돌로 마당을 장식하면, 집은 돌봐야 하는 곳으로 바뀌게 됩니다. 사람을 고달프게 하는 집이 아닌, 그 자리에 넉넉히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것이 사람이 쉴 수 있는 진정한 주말주택이니까요."

↑ "저에게 집은 또 다른 반려자나 다름없어요. 사계절 따뜻하게 사람을 보듬는 곰살맞은 집이죠. 가구 역시 물건 자체보다는, 공간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새로 꾸민 후정과 입식 부엌

내부는 세 칸 기본형으로 안방과 건넌방, 부엌으로 칸이 나뉜다. 안방과 건넌방은 한데 합치고, 마루로 이어진 사랑채를 응접실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집 뒤편으로는 처마 깊이까지 공간을 새로 지어 화장실과 수납공간, 후정을 만들었다. 원래는 둔덕이 바로 닿아 가파른 뒷마당이었는데, 터를 손 봐 화계가 있는 멋진 정원을 구성했다. 안방에 들어서면 통창을 통해 후정이 훤히 보이고, 방의 문을 열어젖히면 사랑방까지 그 시선이 관통한다. 이것이 바로 한옥의 깊이다.

부엌 내부는 입식형으로 바꿔 싱크대와 조리대, 식탁을 배치했다. 원래도 부엌(장지)이 있던 자리라 바닥이 한참 낮았기에, 흙을 돋우고 난방 배관을 깔아 편리하게 만들었다. 이는 개조 시 현대 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반영한 결과다.



손님을 맞는 사랑채는 언제라도 차를 즐길 수 있는 다실로 준비해 두었다. 4중 미닫이창으로 바깥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게 하고, 어깨 높이에는 격자문이 있는 벽장도 두었다. 그녀는 고재 뿐 아니라 미술품과 민예품도 실생활에 어울려야 제 가치를 다한다고 말한다. 100년이 넘은 충무농을 옷장으로 사용하며, 오랜 질그릇으로 식탁을 차리는 것이 그녀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다.

"지금은 주말주택으로 여행을 떠나듯 오지만, 몇 년 후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 정착할 생각입니다. 손자 녀석들이 크고 나서 할머니의 시골집을 기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값진 일이겠어요."

그녀는 명이 다할 뻔한 집을 살려내고, 옛 여염집의 가는 숨을 조용히 잇고 있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집을 보고 지금 사람들이 전통을 위해 어떤 애를 썼는지 느끼게 될 것이다. 매서운 추위에도 싹을 틔운 마당의 매화나무처럼 그녀도, 집도, 참 올곧게 아름다웠다.



   전원사랑 http://cafe.daum.net/countrylove114

출처 : 전원사랑장터
글쓴이 : 토지마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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