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에 2차선 도로를 면하고 있는 이 땅은 좁고 길쭉한 삼각형 모양인데다 도로면보다 평균 1m 내려앉아 못생긴, 가족에게 텃밭으로 쓰는 것 외에는 별다른 활용방법이 없었던 땅이다. 하지만 집을 짓지 못하는 맹지(盲地)는 아니다. 게다가 북쪽으로 도로가 있어 일조권 확보를 위해 층당 1m를 띄워야 하는 법령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곳에 집을 지으면 어떨까?' 하고 살펴보니 쓸 수 있는 면적이 생각보다 많은 알짜배기 땅이었던 것이다.
앞에서 보면 크지만, 옆에서 보면 작은 집
주택은 도로면에서는 그 규모를 꿈에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 보인다. 작은 땅이지만 2대의 주차장 면적을 확보하기 위해 2층 일부를 돌출시키고 북쪽면을 확장해 더 넓어 보이도록 의도한 덕분이다. 1층 매장은 63.83㎡으로 공간 구획 없이 넓게 트여있어 입점업종에 따라 마음대로 배치할 수 있으며, 2층은 82.88㎡ 면적으로 노부모 두 분이 살기에 아담한 규모다
↑ 북쪽에 도로가 면한 상가주택 소향재
"집을 짓는다면 한옥이 좋겠어."
어머니는 늘 한옥에 대한 향수가 있었다. 현대건축에는 좀체 감흥을 보이지 않다가 개량한옥이라도 보여주면 "와, 멋지다" 감탄하며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부모를 위해 실내디자인을 전공하고 한옥전문교육을 비롯, 답사를 다니며 전통건축을 익혀온 큰딸이 팔을 걷었다. 소향재(笑香齋)가 탄생한 이야기다.
이 집 전에 계획한 부모님 집은 '신(新)한옥'이었다. 땅도 이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설계와 공사비 견적까지 마친 상태에서 도로와 면하지 않은 맹지 (맹지<盲地>:지적도상에서 도로와 맞닿은 부분이 전혀 없는 땅으로, 집을 지을 수 없는 조건인 경우가 많다.)라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이리저리 방법을 내봐도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법적 문제에 봉착하고는 모든 일정은 멈춰섰다.
"문득 부모님이 텃밭으로 가꾸고 있는 김포 땅이 생각났어요. 어머니가 아버지께 "그런 땅을 왜 샀냐"며 타박을 했던 땅인데, 확인해보니 앞•뒤로 도로가 접해 있는 '대지'로 맹지가 아니더라고요"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땅이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는 건축주. 맹지와의 오랜 씨름으로 못생긴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해서 동서로 길고 폭이 좁은 삼각형 땅은 부모님의 집터로 낙점됐다.
↑ PLAN-1F
↑ PLAN-2F
들어보니 참 우여곡절이 많은 건물이다. 처음에는 용적률 200%에 맞춰 지하 주차장과 옥탑까지 갖춘 1층 상가 위 3개 층 주택으로 계획됐다.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며 많은 아파트를 설계한 건축주였지만 주택은, 그것도 이렇게 어려운 땅은 또 달랐다. 작은 규모와 좁은 폭 때문에 거실을 넓히면 방이 좁아지고 주방을 넓히니 거실이 좁아지는 딜레마가 곳곳에 산적해 있었다. 계단실을 효율적으로 구성해 실내면적을 최대로 확보하고 쓸모없는 공간을 줄이는 과정을 몇 차례나 거쳐 설계안을 완성했지만 이번에는 아버지가 반대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주변에 신축 건물이 많아 임대를 놓기도 어려울 것이란 이유였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다 싶어요. 김포한강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이 근처에도 아파트와 신축 빌라가 지나치게 많아졌거든요."
2개의 도로와 접해있다는 조건은 주택에는 좋을 리 없지만 상가용 건물로는 아주 좋은 조건이다. 게다가 도로와 접한 면적이 넓기에 상가로서 전시효과도 컸다. 1층을 상가로 임대한다면 부모님의 노후자금으로도 유용하리란 생각도 들었다. 그는 그동안의 실무경험과 시행착오를 토대로 1층은 독특한 색깔의 상가로, 2층은 어머니의 바람이었던 한옥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담은 공간으로 짓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노하우와 실력을 힘껏 쏟아 부었다.
↑ 1층에는 아기자기한 플라워&디저트 카페 [200%]가 들어섰다.
↑ 늘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는 1층 상가
↑ 거실은 바닥재에서부터 한옥의 대청 요소를 곳곳에 두어 좌식생활에 익숙한 부모님을 배려했다.
↑ 후면 도로와 평행하게 현관과 주방, 욕실이 배치됐다. 주방과 거실 사이 TV 선반과 수납공간을 짜고 간단한 식사를 해결할 수 있게 식탁을 만들었다.
↑ 2층 현관으로 들어서면 안방과 거실, 두 개의 방이 1자로 펼쳐진다.
↑ 공간 분할 시 생기는 삼각형 공간에 욕실을 만들었다.
소향재에서 발견한 소폭주택 디자인 해법
상가주택은 건물이 주는 분위기가 입점 업종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주는 카페나 레스토랑 등 아기자기한 매장이 들어온다면 건물의 분위기도 살 뿐 아니라 이를 관리할 부모님의 노고도 덜할거라 생각했다. 1층은 창을 큼직하게 내고 필로티 하부의 벽체까지 1층처럼 보이게끔 넓게 빼 구분을 지웠다. 사실 주차 공간 2대를 확보해야 해서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변경하고 캔틸레버를 적용했는데, 덕분에 처음 계획인 경량철골구조보다 튼튼하고 형태 구성에 있어서 좀 더 자유로웠다는 후문이다.
2층 실내는 방과 거실이 도로면을 기준으로 1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접이문을 닫으면 세 개의 방이 생기고 열면 하나로 이어지는 형태로 폭이 좁은 땅에 제격인 구성이다. 마치 한옥의 방과 대청 그리고 또 방이 연결되는 구조와 흡사한데, 아니나 다를까 실내 곳곳에도 한옥을 연상케 하는 요소들이 눈에 띈다. 무병장수를 의미하는 거북무늬창살과 한지아크릴 위 창살을 취부한 불발기 창, 붙박이장의 지사벽지, 손잡이 모양까지도 단아하다. 대청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거실 바닥의 마루 패턴은 좌식생활을 하는 부모님에 제격이다.
남쪽으로는 높은 빌라 때문에 볕이 거의 들지 않는데다가 방을 내게 되면 정면으로 마주보게 되어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가 있었다. 건물 후면 도로 쪽으로 현관과 욕실, 주방과 다용도실을 두고 거실과 방은 모두 북쪽으로 배치했다. 대신 북으로는 탁 트여 가을, 창밖 코스모스 속에 푹 파묻힌 경치가 무척이나 좋다. 부족한 빛은 천장에 창을 내어 은은한 간접광을 확보했고 맞창을 내 환기와 쾌적함을 더했다. 5m 폭에 82.88㎡(25.07평)로 크지 않은 건축면적이지만 외부 경치를 창을 통해 한껏 끌어들여 시원하고 탁 트인 느낌이 드는 실내다.
작은 집이라고 적은 돈이 들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큰 평수보다야 적게 들기는 하지만, 기초나 골조 등에 들어가는 공정은 동일하기 때문에 평당 공사비는 오히려 높을 수 있다.
작은 땅을 살 때는 일조권 사선제한과 건폐율, 용적률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고 대지경계선에서 50㎝ 안쪽부터 건축할 수 있다는 조건 또한 고려해 집 지을 면적을 가늠해야 한다. 이 땅에 집을 지을 수 있었던 이유도 북쪽에 건물이 없어서 일조권 사선제한은 받지 않기 때문이다.
↑ 작은 동네길과 마주한 건물의 배면
↑ 1층 벽체 일부는 캔틸레버 구조로 만들어 하단에 주차장을 만들었다.
↑ 실내는 평소에는 모두 열어두고 사용하다가 손님이 오면 접이문을 닫아 공간을 구획한다.
↑ 동쪽 방은 책상을 만들어 서재 겸 방으로 사용한다.
↑ 북쪽 넓은 들판으로는 가을 코스모스가 끝없이 펼쳐지고, 겨울에는 설경도 일품이다.
↑ 건물 양쪽으로 도로가 난 주택의 가장 뾰족한 부분. 장점은 강조하고 단점은 디자인으로 보완한 건물이다.
웃음과 향기가 있는 집이라는 뜻의 '소향재(笑香齋)'로 이름을 짓고 나니 꽃과 커피항 그득한 플라워 카페가 마침 1층에 들어왔다. 4층 규모로 지어 발생할 임대수익에서 욕심을 내려놓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가족의 혜안과 강단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우리가 집과 부동산에 관해서는 지나친 욕심을 부리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일이다. 사실 이런 땅은 보물찾기처럼 관심을 갖고 잘 살펴보면 어딘가에는 있는 곳이고, 요리조리 잘 조각하면 보석 같은 삶의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원사랑 http://cafe.daum.net/countrylove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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