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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라든 씨감자에서 동생 위해 희생한 누이를 보다

by 달빛아래서 2012. 1. 13.

 

쪼그라든 씨감자에서 동생 위해 희생한 누이를 보다

[중앙일보] 입력 2011.12.23 00:12 / 수정 2011.12.23 10:03

[2011 중앙시조대상] 대상 권갑하 시인

 

2011 중앙시조대상 대상을 받은 권갑하 시인은 최근 시조집 『아름다운 공존』을 냈다.

 

다문화 가정을 다룬 최초의 시조집이다.

 

그는 “시조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라고 했다. [변선구 기자]
권갑하(53) 시인은 지하철에서 퇴고 작업을 한다.

 

집이 있는 서울 수서에서 회사가 있는 서대문까지 1시간 남짓 출퇴근 길에 시를 다듬는다.

 

올해 중앙시조대상 대상 수상작인 ‘누이 감자’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그의 시조가 현대인의 고독이나 시대상 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도 지하철이란 공간 덕분일지 모른다.

권 시인은 “현대인들로 북적대는 지하철 공간에서 오히려 집중이 잘 되는 편이다.

시조에 오늘의 이야기를 담으려 애써왔다”고 말했다.

수상작 ‘누이 감자’에서도 오늘의 이야기가 들린다. 얼핏 전통적인 자연 서정을 노래한 듯 보이지만, 실은 ‘지금 여기’의 절절한 사연이 스며든 시다. 동생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은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어느 누이의 이야기다. 이 누이가 유방암으로 안타깝게 숨졌다. 누이의 어린 자식들은 어찌 살아야 하나.

 시인은 이 사연에 씨감자의 이미지를 포갰다. 누이의 ‘잘린 한쪽 젖가슴’에 잘라진 씨감자의 이미지를 끌어왔다. 씨감자는 새로 난 감자를 주렁주렁 매단 채 끝내 쪼그라들고 만다. 동생을 위해 희생하고 어린 자식들을 남기고 떠난 누이의 처연함과 닮았다. 권 시인은 “씨감자가 지닌 모성성에 누이가 겪은 힘들었던 시대상을 중첩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권 시인은 20년 전 등단했다. 그 20년 새 그가 깨달은 건 “독자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시조를 낡고 진부한 형식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양식을 현대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기본적으로 장르를 따지지 않습니다. 시조든 자유시든 좋은 시에 감동하는 것이죠.”

 그는 시조의 미학적 가치를 테니스 경기에 비유했다. “경기 룰이 있는 테니스 경기와 네트도 없이 마음대로 공을 치는 것 사이에 어느 쪽이 더 스릴 있고 재미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시조의 문법이란 시적 긴장감을 높이는 최적의 장치”라는 생각이다.

 등단 20년째, 그는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하며 시조단의 꼭대기에 올라섰다.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시조를 더 많이 쓰겠다”고 했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약력=1958년 경북 문경 출생. 농협대학, 고려대 대학원 졸업. 91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92년 조선일보·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98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2005년 올해의 시조작품상, 2007년 한국시조작품상 수상. 시집 『세한의 저녁』(2001), 『외등의 시간』(2009), 『아름다운 공존』(2011) 등. 현 ‘나래시조’ 편집주간, 농민신문사 출판국장.

누이 감자

1
잘린 한쪽 젖가슴에 독한 재를 바르고
눈매가 곱던 누이는 흙을 덮고 누웠다

비릿한 눈물의 향기
양수처럼 풀어놓고

2
잘린 그루터기에서 솟아나는 새순처럼
쪼그라든 시간에도 형형한 눈빛은 살아

끈적한 생의 에움길
꽃을 피워 올렸다

3
허기진 사연들은 차마 말로 못하는데
서늘한 눈매를 닮은 오랜 내력의 깊이

철없이 어린 꿈들은
촉을 자꾸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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