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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과 사람

세계 최고 일식 요리사, 마쓰히사 노부유키

by 달빛아래서 2012. 6. 2.

초밥왕이 꼽은 스시가 가장 맛있는 타이밍?

[중앙일보]입력 2012.06.02 00:06 / 수정 2012.06.02 07:34

[Saturday] 제주 찾은 ‘초밥왕’ 노부유키 … 광어 양식장 물부터 맛보다
세계 최고 일식 요리사, 마쓰히사 노부유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식 요리사인 마쓰히사 노부유키는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음과 열정이다. 요리사와 손님 사이에 마음이 전해지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사진 올리브TV]
1960년이었다. 그는 11살이었다. 형을 따라 처음으로 초밥집에 갔다. 당시 초밥은 아주 비싼 음식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랏샤이!(어서 오세요)” 하며 요리사가 그를 맞았다. 자리에 앉았다. 요리사가 주물럭거리며 쥔 초밥 한 점이 그의 앞에 놓였다. 가슴이 뭉클했다. 뭔가 꿈틀대고, 뭔가 살아있고, 뭔가 역동적인 초밥집 분위기에 그는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그는 ‘초밥왕’을 꿈꿨다. 일본에서 페루로, 아르헨티나로, 알래스카로, 다시 LA로 옮기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식 요리사가 됐다. 그의 이름은 마쓰히사 노부유키(63). 세상은 그를 ‘노부’라고 부른다. 뉴욕·런던·밀라노·도쿄 등 25개국의 세계적 도시에 그의 레스토랑이 있다.

 
 노부유키가 최근 제주도를 찾았다. 미국 LA와 라스베이거스의 노부 레스토랑에는 제주산 양식 광어가 공급된다. 노부가 LA에 레스토랑을 열던 87년부터 ‘오션 프레시’라는 한국 업체에서 생선을 제공해 왔다. 노부는 자신의 레스토랑에 공급되는 제주산 양식 광어를 직접 보고자 했다. 또 요리사를 꿈꾸는 제주도의 고교생 5명을 불러 요리와 삶에 대한 재능 기부(CJ E&M 푸드채널 올리브 ‘셰프스 테이블’ 2일 오후 1시 방영)도 했다. 대가의 눈썰미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노부는 식재료나 조리 과정에서 섬세하고 빈틈 없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다.

 이날 오전 그는 제주의 광어 양식장을 직접 찾았다. ‘광어를 어떻게 양식하는지 보려나 보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노부는 양식장으로 물이 들어오는 호스에 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물을 떠서 직접 마셨다. 광어가 살고 있는 물의 맛을 손수 확인했다.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는 요리사니까. 달리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그건 ‘노부의 본능’이었다.

 노부는 늘 ‘최고의 식재료’를 고집한다. 그는 가장 신선하고 가장 질이 좋은 식재료만 쓴다. 가격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말이다. 그건 ‘노부 요리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최고의 식재료로 요리를 하고 최고의 타이밍에 먹어야 한다. 그럴 때 요리사는 ‘최고의 순간’을 손님에게 줄 수 있다.”

 노부는 학생들과 함께 장을 봤다. 제주시의 동문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골랐다. 저녁에 학생들을 위해 요리를 할 참이었다. 그는 메뉴를 미리 정하지 않았다.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본 뒤 결정할 것”이라고만 전했다. 거기에는 노부 요리에 담긴 ‘현장의 철학’이 녹아 있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가든 그곳에서 가장 신선한 식재료를 고르는 현장성이다. 그는 광어와 갈치, 제주산 돼지고기와 토마토 등 야채를 샀다.

 사실 노부의 요리에는 그의 인생이 녹아 있다. 지금의 노부 메뉴가 나오기까지 30년 이상 걸렸다. 그는 7세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쿄 신주쿠에 있는 스시집에서 일했다. 접시 닦는 일부터 도제식으로 배웠다. 그는 “지금도 내 요리의 원천은 일식이다. 일식 중에서도 스시(초밥)다”고 말한다.

 그렇게 7년간 도쿄에서 스시를 배웠다. 그중 3년은 설거지와 접시 닦기, 식당 청소를 하면서 보냈다. 요리는 엄두도 못 냈다. 매일 새벽, 식당의 요리사와 함께 수산물 시장에 가서 장을 봤다. 요리사는 생선을 골랐고, 그는 생선을 담은 물동이만 날랐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힘겹고 지칠 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직접 스시를 만드는 날이 과연 올까?” 그때마다 노부는 ‘왜 내가 이 직업을 골랐나?’를 자신에게 되물었다고 한다. 답은 늘 똑같았다. “나는 스시를 만들어서 손님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게 노부의 꿈이었다. “설거지를 하고 버스를 타며 생선을 사왔던 일들은 거칠고 험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만 3년이 됐을 때 요리사 한 명이 식당을 떠났다. 그제야 노부는 요리를 배울 수가 있었다.

마쓰히사가 제주도 학생들과 함께 해녀가 잡은 해산물을 보고 있다.
 노부는 스물네 살 때인 72년 남미의 페루로 갔다. 동업자와 함께 일식집을 열었다. 쉽진 않았다. 당시만 해도 일식은 그들에게 낯설디 낯선 음식이었다.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노부에게 물었다.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 어떻게 적응했나.

 “손님의 반응을 살폈다. 그들의 피드백에 귀를 기울였다. ‘이 요리는 이랬으면 좋겠다. 저 양념은 저랬으면 좋겠다’ 등 현지 손님들의 충고를 전적으로 반영했다. 당신들이 일식에 입을 맞추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의 입맛이 기준이었다. 페루의 고유한 음식과 양념, 소스도 공부했다. 일식에 그런 양념과 소스를 접목하려고 애썼다.”

●남미에 얼마나 있었나.

 “페루와 아르헨티나에서 3년을 보냈다.”

●왜 남미를 떠났나.

 “동업자와 마찰이 있었다. 나는 손님들이 내 요리를 먹고 행복해지길 바란다. 이 말은 가장 신선한 생선과 가장 질이 좋은 재료를 쓰고 싶다는 뜻이다. 그런데 동업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식당의 이익에 더 신경을 썼다. 요리사는 예술가다. 나는 값이 싸고 질이 떨어지는 식재료를 이용한 예술에선 만족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디로 갔나.

 “미국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로 갔다. 내 이름을 따서 ‘마쓰히사 일식집’을 열었다. 그런데 전기 누전으로 불이 나고 말았다. 가게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돼버렸다. 그때 일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잘 얘기하지 않는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일로 빚도 많이 졌다.” 알래스카 이야기를 할 때 노부의 표정은 진지했고 눈시울은 붉어졌다.

●그런 시련이 있은 줄 몰랐다.

 “당시에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 요리사의 길이 쉽진 않다. 나도 중간에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꼭 기억해 줬으면 하는 게 있다. 그런 시련을 거치고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거다. 요리사를 꿈꾸는 이들이 그걸 꼭 알았으면 좋겠다. 시련을 통해 성장한다는 걸 말이다.”

 노부는 77년 알래스카에서 LA로 갔다. 10년간 다른 식당에서 일하다 87년 베벌리힐스에 ‘마쓰히사’란 자신의 식당을 열었다. 72년 페루에 건너와서 87년 LA에 식당을 열기까지 15년이 걸렸다. 그 세월 동안 노부는 남미와 북미의 음식, 양념, 소스, 식습관을 자연스레 몸에 익혔다. 그리고 그걸 메뉴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LA의 노부 식당을 찾은 여성이 스시를 주문했다. 날생선회를 담은 접시가 식탁에 올라갔다. 그때만 해도 미국인에게 스시는 그리 익숙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 여성은 “날생선은 도저히 못 먹겠다. 접시를 다시 가져가라”고 말했다. 접시를 가져온 노부는 고민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뜨거운 올리브 오일을 발라서 스시의 일부만 익혔다. 그리고 접시를 가져가 “한 번만 더 맛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 여성은 스시를 한 입 먹었고 잠시 후 접시를 모두 비웠다. 이후 노부는 연어와 조개관자·문어 등 해산물뿐만 아니라 쇠고기와 두부에도 같은 조리법을 적용했다. 그런 식으로 노부의 메뉴는 진화했다.

●로버트 드니로와 함께 뉴욕에 ‘노부 레스토랑’을 열었다. 어떻게 동업하게 됐나.

 “LA 레스토랑에 로버트 드니로가 자주 왔다. 단골이었다. 당시 나는 로버트 드니로가 누군인지도 몰랐다. 식당을 운영하면서부터 영화와 TV를 안 본 지 너무 오래 됐다. 어느 날 그가 ‘뉴욕에 함께 식당을 열자’고 제안을 했다.”

●뭐라고 답했나.

 “나는 거절했다. 알래스카에서 실패를 한 데다 아직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그렇게 4년을 더 보냈다. 로버트 드니로는 그 세월을 기다려줬다. 그래서 그에게 신뢰가 생겼다. 4년이란 시간을 기다린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부는 그와 함께 94년 뉴욕에 ‘노부 레스토랑’을 열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의 요리를 찾기 시작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마돈나, 스티븐 스필버그, 브루스 윌리스, 귀네스 팰트로 등이 그의 단골 고객이다. 노부의 메뉴는 대히트를 쳤다. ‘노부 레스토랑’은 대륙을 옮겨가며 생겨나기 시작했다. 97년에는 런던, 98년에는 도쿄에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프리카 대륙을 제외한 25개국의 월드시티에 노부 레스토랑이 생겨났다.

●노부 요리의 토대가 ‘스시’라고 했다. 스시에서 중요한 건 뭔가.

 “요리마다 ‘최고의 순간’이 있다. 스시도 마찬가지다. 요리사가 밥을 쥐어서 회를 얹어 손님 앞에 스시를 한 점 내미는 순간이다. 그렇게 손님 앞에 ‘탁’ 놓아진 스시는 1~2초가 지나면 1~2㎜ 정도 착 가라앉는다. 그때가 스시를 먹는 ‘최고의 순간’이다. 요리사의 마음이 손님에게 전해지는 순간이다. 왼손으로 쥔 스시를 오른손으로 손님의 접시 위에 탁 올리는 순간, 요리사의 에너지도 함께 올려지는 거다.”

●다른 요리사의 스시를 맛볼 때는 무엇으로 평가하나.

 “스시마다 개성이 있다. 이게 낫다, 저게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나는 스시에 요리사의 마음이 전해지는지를 본다. 요리사가 스시를 올릴 때 에너지가 살아있는지를 본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뭔가.

 “마음과 열정이다. 요리사와 손님 사이에 마음이 전해지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요리뿐만 아니다. 건축도 미술도 마찬가지다. 집을 짓는 사람과 집에 사는 사람, 그림을 그린 사람과 그림을 보는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해야 한다. 그게 커뮤니케이션이다.”

 그에게 ‘한식 세계화를 위한 노하우’를 물었다. 노부는 “음식의 세계화를 위해선 현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고추장이 반드시 매워야만 하는지, 간장이 꼭 짜야만 하는지 짚어봐야 한다. 처음에 미국인은 날로 먹는 회를 낯설어 했다. 그래서 참치회의 겉만 살짝 익혀서 샐러드로 만들었다. 그러자 다들 좋아했다. 그런 식이다. 한식의 맛, 전통의 맛만 고집하면 어렵다. 한식의 정체성을 안고 가면서도 서구인의 취향과 음식 문화에 녹아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은 당신을 ‘최고의 요리사’로 평한다. 자신도 그걸 인정하나.

 “나는 최고가 아니다. 스스로 최고라고 인정하는 순간, 더 이상의 발전은 없다. 나는 늘 부족함을 느낀다. 그래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다. 계속 진화할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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