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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과 사람

문제아 고교생, 국제요리대회 은메달 달다

by 달빛아래서 2012. 5. 28.

문제아 고교생, 국제요리대회 은메달 달다

  • 석남준 기자  

  • 입력 : 2012.05.28 03:31

    서울 영일고 김재현 군, 나쁜 짓만 골라하던 '꼴통' 하루 14시간 요리 맹연습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기분 정말 좋네요~ 하하"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세계적 권위의 요리대회에서 최연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서울 영일고 2학년 김재현(17)군은 지난 4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요리대회 브런치 부문에서 이 상을 땄다. 싱가포르 국제요리대회는 세계조리사연맹(WACA)이 인증한 대회로 세계 3대 요리대회에 꼽힌다.

    김군은 시상식 직후 "프랑스 파리에 한식 레스토랑을 차린 후 한식학교까지 세우는 게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20일 오후 서울 한국조리예술학원에서 김재현(17)군이 지난 4월 열린 싱가포르 국제요리대회에서 수상한 은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김군이 이처럼 '번듯한' 학생이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중학생 때까지 김군은 학교에서 손꼽히는 '문제아'였다. 김군은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이라곤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공부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좋았던 김군의 중학교 성적은 같은 반 30명 중 23등을 밑돌았다. '우리 애들'이라고 서로를 부르던 10여명의 친구와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 안팎에서 어울려 놀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담배도 피웠다. 부모가 자리를 비운 친구 집에서 술도 마셨다. 반에서 1~2등을 놓치지 않았던 두 살 터울의 누나와 자주 비교된 김군은 부모의 걱정거리였다. 김군은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 입에서 '나중에 뭐 하려고 그러느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 김군도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문득 대기업 영양사였던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났다. "대학 안 나오면 할 게 없다"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조리과학고에 지원했다. 탈락했다. 내신성적과 면접으로 합격이 판가름 나는데 내신성적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오기가 생겼다. 중학교 마지막 겨울방학,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그때부터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원에서 보냈다. 같이 어울려 놀던 친구들과는 연락을 끊었다. 김군은 "요리를 배우느라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은 것도 있고, 미친 듯이 요리를 배운다고 하니 친구들이 먼저 연락을 안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토록 하기 싫었던 영어 공부도, 요리 재료를 알기 위해 사전을 옆에 두고 스스로 했다. 한국조리예술학원 이철호 원장은 "재현이가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학원으로 와서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새벽 1~2시까지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일요일에는 교복을 싸들고 학원에 가 밤새워 연습을 하고는 곧장 학교로 가기도 했다.

    오기와 노력이 합쳐지자 성과가 나타났다. 한식·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딴 뒤 작년 10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향토식문화대전에서 대학생들을 제치고 한식 부문 금메달을 거머쥔 것이다. 아들이 요리를 배우는 것을 반대했던 아버지도 달라졌다. 회사가 끝난 뒤 아들의 요리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 집으로 향하는 날이 많아졌다.

    하루 14시간의 맹연습을 한 끝에 김군은 싱가포르 국제요리대회 브런치 부문에 아귀롤스테이크, 간장과 고추장을 이용한 닭가슴살과 콩소시지 등을 출품했다. "미적 아름다움과 영양 균형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왔다. 스위스·싱가포르·홍콩 등 6개국 40여명의 출전자 대부분을 제치고 은메달을 받았다.

    학교의 문제아로 칭찬 한번 들은 적 없었던 김군은 학교 정문 대형 플래카드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김군이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기분, 정말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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