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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는 언제나 숨 가빴다네 아픈 청춘이라고 말조차 못 했지"(전원책변호사)

by 달빛아래서 2013. 1. 8.

[5060이 2030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 세대는 언제나 숨 가빴다네 아픈 청춘이라고 말조차 못 했지"

전원책 변호사
... 입력 : 2013.01.08 03:00

가진 것은 적고 머릿수는 많고 치열한 경쟁에 늘 시험의 연속…
소 팔아 대학 가고 밤새워 일했지
쌍용차·용산… 나도 가슴이 먹먹 그러나 法治 허물면 피해자는 우리
청년아, 다시 용기 내 일어나게… 우리가 그대 아픔 귀 기울일 테니

저는 인생을 두루마리 화장지에 비유하곤 합니다. 20대엔 아무리 풀어 써도 줄지 않던 뭉치가 50대엔 조금만 써도 푹푹 줄어듭니다. 60대가 되면 한 달이 하루처럼 간다고들 하지요. 그래서 장년이 되면 누구나 초조해집니다. 남은 시간은 얼마 없는데 할 일은 많이 남았습니다. 그런 초조감에다 다 큰 자식들은 여전히 어린앱니다. 노후 걱정은 어깨를 움츠러들게 합니다. 우리 부모들은 더 어려웠지요.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당신들은 굶으면서 교육에 매달렸습니다. 그 덕분으로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고비를 넘어왔습니다. 숨 가빴지요. 문자 그대로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우리 세대 그리고 선배들은 참 바쁘게 살았습니다. 머릿수는 많고 자리는 적었습니다. 언제나 경쟁은 치열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의 연속이었지요. 물자는 적고 먹을 것은 없었습니다. 읽을 책도 부족했습니다. 입주과외를 하면서 우골탑(牛骨塔)이라 불리던 대학을 졸업했지만 일자리는 보이지 않았지요. 그래도 친구들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하숙비를 조금 넘는 봉급을 주는 중소기업에서 밤새워 일했습니다. 그 무렵 은행은 최고의 직장이었지요. 초임지는 대부분 지방 근무였지만 은행원이라는 자부심으로 폼을 잡았더랬습니다. 세칭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중견 건설회사에 입사한 친구 둘은 취직 턱을 내기 바쁘게 열사(熱砂)의 나라 사우디로 갔습니다. 다들 힘들 때였습니다. 그래도 아프다고 징징대지는 않았지요. 4만원이 채 안 되는 봉급으로 20년 적금을 들면 작은 집을 장만할 수 있다며 종로에서 충정로 단칸방까지 걸어다니던 친구가 생각납니다. 그 친구는 지금 어엿한 기업체 사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아프다고 합니다. 한데, 어느 시대건 어디 아프지 않은 청춘이 있었습니까? 하지만 지금, 아프다고 외칠 여지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들어줄 사람이라도 있으니 고맙지 않습니까? 견딜 수 있는 슬픔이 슬픔이 아니듯, 참을 수 있는 아픔이 아픔이 아닌 것을 지금 청년들이 알기나 하는 걸까요? 혹 그런 아픔이 과보호를 받으며 성장한 탓은 아닙니까? 이 세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헛된 자만심에 빠진 것은 아닌지요. 인력난을 하소연하는 중소기업체 사장을 만날 때마다 저는 화가 납니다. '스펙'은 가득한데 업무 능력은 '제로'라는 기업체 임원들의 말을 들으면 헛웃음이 나옵니다. 그런 청년일수록 낮은 봉급만 탓하며 칼퇴근을 한다더군요.

흔히 청년들은 휴머니스트가 됩니다. 자연히 정치 경제 전반에 관해 소위 기득권층을 공격하게 됩니다. 소수자 소외자 빈자(貧者)에 대한 동정심은 장려할 일이지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사회의 틀을 유지하는 것은 자유와 그 자유에 따르는 책임입니다. 무조건적인 동정심으로 인해 그 틀을 훼손하는 순간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보루는 무너집니다.

가끔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송전탑 농성과 2009년 용산 사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습니다. 저 역시 가슴이 먹먹합니다. 건국 이래 최대 정리해고 사태를 누군들 쉽게 넘기겠습니까? 쌍용차 노동자가 이 엄동설한에 송전탑에 올라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꼭 그런 극단적인 투쟁 방법만이 남아 있었던 걸까요?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법치(法治)를 허물면 그 피해는 우리 모두가 입습니다. 철탑에 매달린 그분들의 뜻이 '적법(適法)' 밖의 문제라면 그건 의사당 안에서 정치의 틀로 논의해야 할 일입니다. 용산 사건은 저는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사건은 좌우 진영에 따라 너무나 시각이 다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 사건을 주도한 이 중엔 세입자가 아닌 분들이 상당수였고, 그들은 쇠구슬과 화염병으로 시민이 다니는 거리를 위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세대 간의 갈등이 아닌 좌우 진영의 갈등입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청년 세대를 생각합니다. 어느 시대에도 세대 간 간극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갈등이 유난해 보이는 것은 우리 세대가 청년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청년 세대가 너무 무기력한 때문 아닌가요? 저는 감히 말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달린다면 고지(高地)가 보일 것이라는 걸 말입니다. 적어도 지금은 우리 때보다 대가는 확실히 보장되는 시대인 것은 확실합니다. 스스로를 돕는 자에게 사회는 배반하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첫째 미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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