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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육영수

부하의 실수를 장점으로 띄워주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용인술

by 달빛아래서 2014. 1. 11.

[Weekly BIZ] [신동준의 '동양학 산책']

부하의 장점 띄워주는 용인술이 더욱 필요한 요즘

  • 신동준 21세기정경연구소장
  • 입력 : 2014.01.10 14:04

    박정희 대통령의 일화 - 김용환 당시 수석이 경제난 타개책 보고때
    심기일전의 機를 氣로 잘못 썼는 데… "마음 가다듬자는 것 아니냐"며 사기 살려줘

    
	신동준 21세기정경연구소장
    신동준 21세기정경연구소장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은 여러 사례를 들어 칭찬의 위력을 실감 나게 묘사해 놓았다. 칭찬은 위기에 더욱 힘을 발휘한다.

    유비가 조조 군사에게 쫓겨 허겁지겁 달아나는 와중이었다. 조자룡이 천신만고 끝에 유비의 혈육 유선을 품에 안고 돌아오자 유비는 유선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크게 화를 냈다. "하마터면 나의 장수를 잃을 뻔했다!"

    조자룡을 비롯한 전 장병이 감격한 것은 물론이다.

    지난 1973년 말 국무회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석유 파동으로 보유 외환이 바닥났다는 보고를 접하자 곧바로 경제기획원 장관을 불러 종합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그러나 대책은 실망스러웠다. "부총리, 수고했소. 워낙 중요한 사안이니 청와대에서 다시 검토해 결론을 내도록 합시다."

    이내 집무실로 돌아오고 나서 김용환 경제1수석을 불렀다. "경제기획원에 대책을 마련토록 했는데 그렇게 미지근하게 대응해서는 난국을 타개하기 어려울 것 같소. 임자가 다시 만들어 보도록 하시오."

    한 해 전 기습적 사채 동결 조치인 '8·3 조치'를 만든 바 있는 김용환은 당시 팀을 다시 소집했다. 밤샘 작업 끝에 1974년 1월 초 '대통령 긴급조치 제3호와 관련 사항에 관한 보고' 계획안이 마련됐다. 이른바 '1·14 조치'다. 당시 김용환이 낭독을 마치고 안건을 통과시키려는 순간 문교부 장관 민관식이 소리쳤다.

    
	부하의 장점 띄워주는 용인술 일러스트

    "각하, 틀린 글자가 하나 있습니다. '심기일전(心氣一轉)'이 아니라 '심기일전(心機一轉)'입니다." 오탈자를 수십 번 확인했던 김용환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통상 우리가 쓰는 한자는 민 장관 말이 맞소. 그러나 기(機)를 기(氣)로 바꿔 쓴 것도 괜찮지 않소? 마음과 기분을 한번 가다듬자는 뜻인데 오히려 이게 더 좋은 것 같소!"

    결국 그대로 통과됐다. 김용환은 2002년 펴낸 회고록 '임자, 자네가 사령관 아닌가'에서 당시 상황을 이같이 술회했다. "경제 관료들을 휘어잡는 박 대통령 특유의 용인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노고를 치하하고 사기를 꺾지 않으면서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도록 격려하고자 한 것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관사(觀思)'에 비슷한 일화가 나온다. 하루는 공자가 모처럼 외출하려는데 문득 소나기가 내렸다. 준비해 놓은 수레는 덮개가 없었다. 공자가 곤혹스러워하자 제자들이 말했다. "자하(子夏)에게 수레 덮개가 있습니다. 이를 빌리도록 하십시오." 자하는 공자 수제자다.

    그런데 공자는 "자하는 인색해 재물에 약점이 있다. 사람을 사귈 때는 장점은 높여 주고 단점은 피해야 한다. 그래야만 오래도록 사귐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호단(護短)'이란 말이 나왔다. 사람들은 장점보다 단점을 더 잘 본다. 심지어 어떤 상사는 중인환시(衆人環視) 속에 부하의 단점을 들춰내 망신을 주기도 한다. 노력하려는 부하의 각오를 꺾는 최하의 용인술에 해당한다. 호단이 필요한 이유다.

    위기에는 호단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게 바로 상대의 장점을 높여주는 '추장(推長)'이다. '추장호단'을 행한 대표적인 인물로 손권을 들 수 있다. 그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 장상(將相)들을 모아놓고 이같이 말했다. "나는 늘 상대의 장점을 높여주고 상대의 단점을 곧 잊어버렸다."

    원문은 '망단귀장(忘短貴長)'이다. 추장호단과 같은 뜻이다. 실제로 손권은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인재를 발탁해 대임을 맡긴 뒤 전폭 신임을 보냈다. 적벽대전 당시 주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이릉대전 때는 육손을 전격 발탁해 기사회생의 승리를 거머쥔 배경이다.

    예로부터 득인과 용인의 요체를 흔히 '지용임신(知用任信)'으로 요약해 왔다. 인재가 있는 것을 알면 불러들여 임무를 맡기고, 임무를 맡긴 이상 믿으라는 얘기다. 그러나 위기 때는 맡기고 믿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적극 띄워 주며 독전하는 '추장'의 용인술이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단점과 동시에 한 가지 이상 장점을 지니고 있다. 단점이 크면 클수록 오히려 장점도 클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은 이치와 같다. 사람은 장점을 북돋워주면 더욱 잘하기 마련이다. 현우(賢愚)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신만의 자존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천하는 한없이 넓기에 아무리 성군일지라도 반드시 여러 유형의 인재와 함께 일을 도모해야만 득천하(得天下)와 치천하(治天下)에 성공할 수 있다. '호단'을 넘어 '추장'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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