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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의 쾌거가 꺼림칙한 까닭

by 달빛아래서 2014.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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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의 쾌거가 꺼림칙한 까닭

  • 민변이 밝힌 국정원 不法, 그런데 민변은 믿을 수 있나
    민변의 간첩 사건 변호는 은폐로 보인 적도 있어…
    국정원 불법 감시하듯 민변의 문제도 지켜봐야
양상훈 논설주간 사진
양상훈 논설주간
국가정보원이 간첩 혐의자 증거로 제출한 문서가 위조된 것이란 사실을 밝혀낸 단체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다. 인권 보호를 최대 가치로 삼는 변호사 단체로서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민변이 올린 이 커다란 전과(戰果)로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졌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독(毒)이 든 사과를 받아든 것 같은 꺼림칙한 기분이다.

군사정권 시절 민주 인사들을 변호하던 인권 변호사들이 1988년 민변을 창립했다. 당시의 민변은 독재에 눌려 있던 국민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방패처럼 받아들여졌다. 조영래·홍성우 변호사 같은 인물은 법치주의의 성채와도 같이 우뚝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김근태 고문 사건, 권인숙 성 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은 우리 역사를 바꾸지 못하고 그냥 묻혔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초창기 선배 인권 변호사들이 걸었던 그 길을 지금의 민변이 그대로 따라 걷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간첩 혐의자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법적 방어 수단을 모두 사용할 권리를 갖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려는 자유민주주의다. 하지만 변호사가 피고인을 법률적으로 돕는 것과 자유민주체제의 형사소송 절차를 이용해 운동권 용어로 '합법 투쟁'을 벌이는 것은 구별돼야만 한다. 불행히도 지금의 민변은 후자(後者) 쪽이라고 생각한다.

민변은 2011년 검찰이 '왕재산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을 때도 "정국 돌파용 공안 사건"이라고 했다. 검찰 기소가 황당하다고도 했다. 사건 자체가 조작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는 조작일 수가 없었다. 1993년 한 사람이 간첩 김덕용의 지시를 받고 월북했다. 8월 26일 김일성으로부터 접견 교시까지 받았으나 도리어 북의 실상을 보고 환상에서 깨어났다. 대학교수인 그는 2011년 법정에 나와 이 모든 사실을 증언했다.

그런데 재판에 앞서 민변 변호사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와 "묵비권을 행사해달라"고 요구했다. 진실을 숨겨 달라는 것이었다. 피고인의 법적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간첩의 증거를 인멸하려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변호가 아니라 투쟁이다. 증언한 교수는 법정에서 "이 사건이 조작된 것으로 역사에 남아선 안 된다. 이제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김덕용만이 아니라 민변을 향해서도 한 말일 것이다. 대법원은 김씨 등 5명을 간첩 혐의로 유죄판결했다.

처음 체포됐을 때 체념한 듯하던 간첩 혐의자들이 민변 변호사들을 만난 다음 돌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철저히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그러지 않아도 어려운 간첩 수사를 더 힘들게 만든다. 범행 지시자들이 북한에 있고, 치밀하게 증거를 숨기는 간첩 사건에서 혐의자가 자백하지 않으면 수사는 난항에 빠지기 쉽다. 민변은 왕재산 간첩 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법원에 14건의 준(準)항고를 냈다. 모두 기각되자 대법원에 또 재항고했다. 검찰은 이를 조직적인 수사 방해로 보았다. 결국 국정원과 검찰은 왕재산 사건 수사 50일 동안 피의자로부터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일부 간첩 혐의자들은 묵비권 정도가 아니라 오만한 행태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왕재산 간첩 혐의자 일부는 조사받으러 구치소 밖으로 나가는 것도 거부했다. 교도관들이 강제로 옮기려 하자 큰 소리로 교도관들에게 경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수사관을 제소하기도 했다. 심지어 간첩 한 명은 시위대에 끼어 국정원 정문 앞에서 "간첩 조작하지 말라"며 데모까지 벌였다.

왕재산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인데 이 사건 담당 민변 변호사 한 사람이 북한에 가겠다고 방북 신청을 냈다. 간첩 혐의자의 변호사가 간첩 본부인 북한에 가겠다는 걸 통일부가 허가할 수는 없었다. 그는 또 소송을 제기했다. 간첩 사건 때 단골로 나서는 민변 변호사 중 핵심 인물은 KAL기 폭파범 김현희에 대해 "완전히 가짜다.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르지만 절대 북한 공작원이 아니다"고 했던 사람이다. 또 한 사람은 작년 독일 세미나에서 한반도 불안은 미국과 남한 탓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그 자리엔 북한 통일전선부 산하기관 인물들도 앉아 있었다. 이들에게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은 무엇일까. 지켜야 할 신성한 가치일까, 아니면 이용하기 좋은 수단일까.

과거 국정원이 간첩으로 발표한 사건이 나중에 무죄로 뒤집힌 경우가 적지 않다. 대부분 자백이나 증거가 불법적으로 얻어진 때문이다. 이번 국정원 증거 위조 사건도 그런 사례의 하나로 추가될 것이다. 너무나 한심하고 개탄스러운 일이다. 단 한 사람의 억울한 간첩 혐의자도 나와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민변 변호사들의 간첩 사건 변호 자체는 누구도 문제 삼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변호가 선(線)을 넘어서 북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키려는 노력 자체를 무력화하고, 법을 이용해 우리 사회를 농락하는 것까지 눈 감고 있을 수는 없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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