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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양식.자재

'내 집' 욕심 버렸더니 이웃도, 손님도 찾는 '우리 집' 완성됐다

by 달빛아래서 2014. 4. 18.

[집이 변한다] [23] '내 집' 욕심 버렸더니 이웃도, 손님도 찾는 '우리 집' 완성됐다

  • 퇴촌=박세미 기자
  • 입력 : 2012.09.28 02:58

    [이웃에 열린 공간 둔 광주시 퇴촌 '지렁이집']
    산비탈 위 그대로 얹은 3층 ㄷ자 구조, 공적·사적인 공간 아닌 중성적인 집
    이웃·아이들, 앞마당·발코니 자유 왕래… 지하 1층엔 외국인 교사·학생용 게스트룸
    "가족 프라이버시요? 중정만으로 충분"

    
	건축가 김원기씨
    건축가 김원기씨
    내 집과 이웃을 높은 밀도(密度)로 붙여놓은 공동주택이 많지만, 정작 도심의 공동체 감도(感度)는 높지 않다. 이웃 주민의 얼굴을 아는 것도 쉽지 않고, 그 많던 주민 공동체도 상당수 사라졌다.

    아파트에서만 20여년간 살았던 건축가 김원기(44·노드 대표)씨는 지난해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자신의 주택 '지렁이집'을 설계하며 아파트 숲에서 잊었던 '이웃과의 삶'을 다시금 떠올렸다. '지렁이집'이란 이름은 "땅을 헤집고 다니지만 그 땅에 비옥함을 주는 지렁이 같은 순기능적인 집을 만들고 싶다"는 뜻에서 그가 직접 붙인 것이다. 최근 현지에서 만난 건축가는 "집은 개인의 것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며 "공적인 곳도, 사적도 곳도 아닌 중성(中性)적인 집이 됐으면 했다"고 했다.

    지렁이집의 '중성적' 공간은 여러 곳이다. 집 형태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부식동판 징크와 대리석으로 마감한 ㄱ자 형태의 '큰 지렁이' 한 동과 고밀도 목재패널로 마감한 ㅡ자 형태의 '작은 지렁이' 한 동을 위아래로 살포시 겹쳐 전체적으로 ㄷ자 모양 구조를 완성했다. "집이 복잡하게 설계된 건 산비탈을 그대로 살려 집을 층층이 비껴 올렸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하를 포함해 총 3개 층이지만, 각 층은 높이 차가 3~3.5m가 날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높다. 마을 입구에서 마주 보이는 지하 1층에는 주차장과 게스트룸, 지상 1층으로 올라가는 중간쯤의 0.5층 자리에는 필로티(기둥을 설치하고 그 위부터 건물을 올리는 구조) 발코니, 지상 1층에는 거실과 부엌·부부 방·앞마당·중정(中庭) 등을 배치했다. 2층은 두 딸의 공간이다.

     
    
	건축가 김원기씨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설계한 자택‘지렁이집’. 건축가는 푸른색 부식 동판을‘토룡(土龍·지렁이를 일컫는 말)’의 비늘처럼 만들어 회화적인 느낌을 강조했다.“집의 풍광 역시 나만의 것이 아니고 마을 주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을 반영했다. /사진가 이재성
    건축가 김원기씨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설계한 자택‘지렁이집’. 건축가는 푸른색 부식 동판을‘토룡(土龍·지렁이를 일컫는 말)’의 비늘처럼 만들어 회화적인 느낌을 강조했다.“집의 풍광 역시 나만의 것이 아니고 마을 주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을 반영했다. /사진가 이재성
    건축가는 이 중 필로티 발코니와 게스트룸, 앞마당, 심지어 집 바깥쪽 사유지를 이웃들에게 '내줬다'. 주차장 옆 돌계단을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필로티 발코니와 사유지는 "주민들과 자녀들이 대화를 나누거나 쉬고 책을 읽는 공간"이라고 한다. 특히 건축가가 연못을 끼고 있는 사유지 공터에 직접 건축 폐자재를 가져다 벤치와 햇빛가리개를 만들어 '올챙이 쉼터'라는 이름까지 붙여놨다. 이런 배려 때문에 이웃 주민들은 건축주가 있든 없든, 허락해주든 안 하든 자유롭게 이 '남의 집'을 왕래한다.

    
	‘큰 지렁이’와‘작은 지렁이’두 동이 겹쳐지는 결절점. 그 앞에는 다리를 놓아 여러 공간적 변화를 줬다. 계단실 앞 데크는‘공간을 나누는 집’인 이곳에서 가장 개인적인 곳이다.
    ‘큰 지렁이’와‘작은 지렁이’두 동이 겹쳐지는 결절점. 그 앞에는 다리를 놓아 여러 공간적 변화를 줬다. 계단실 앞 데크는‘공간을 나누는 집’인 이곳에서 가장 개인적인 곳이다.
    작업실로 계획했던 지하 1층 방은 한국으로 연수 오는 독일 교사들이나 대학생 등 '객(客)'들이 머물고 가는 게스트룸으로 쓰인다. 데크를 앞에 둔 아늑한 정취의 이곳에서 지난 몇 달간 6~7명의 외국인 교사와 학생이 거쳐 갔다. 10월 10일에는 또 다른 독일인 교사를 맞이한다. 1박당 수만원씩 받는 상업적 공간은 물론 아니다. "딸이 다니는 대안학교 측 요청으로 시작했지만 '어차피 자주 안 쓰는 방인데 뭐'라며 흔쾌히 승낙했어요. 처음엔 돈을 전혀 받지 않았지만 최근엔 학교에서 '미안하다'며 가스비 정도를 주더라고요(웃음)."

    
	0.5층에 위치한 필로티 발코니. 건축가는 이 곳을 하교하는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들에게 내줬다.
    0.5층에 위치한 필로티 발코니. 건축가는 이 곳을 하교하는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들에게 내줬다.

    대부분이 대안학교 학생인 동네 아이들은 이 집의 돌계단을 거쳐 데크, 앞마당을 통해 '지렁이집' 기준으로 200m 정도 떨어져 있는 학교에 다닌다. "지름길은 아니지만 계단이 많고 연못과 마당이 있다 보니 애들이 재밌어서 자꾸 온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집을 둘러싼 낮은 벽돌담에는 주민이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틈이 있고, 집 외벽 바깥쪽에는 남의 차량도 마음대로 주차할 수 있게 내버려두는 등 온통 '열린 공간' 투성이다. "닫힌 공간, 내 가족만 쓰는 집…. 이렇게 해서 뭔가 대단한 걸 얻나요? 그러면 집을 짓고 사는 의미가 없잖아요. 이렇게 해도 전혀 불편하지 않고요." 건축가는 "대신 ㄷ자 건물 안쪽에 중정을 둬 가족만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으로 삼았다"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연면적 90평(약 300㎡), 평당 공사비는 700만원 정도 들었다.

    건축가는 "얼마 전 늦게 얻은 28개월짜리 막내아들 람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애가 한 달 만에 '안 간다'고 하더라"고 했다. "람이에게 '왜? 유치원 싫어?'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재미없어.' 아이에겐 우리 집이 놀이터이고 놀이동산인 셈이죠." 산 중턱을 오르내리는 동네 아이들에게 쉴 새 없이 인사를 건네며 건축가가 한 말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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