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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by 달빛아래서 2014. 4. 24.

북스 저자 인터뷰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입력 : 2014.04.18 10:25

2012년 3월 이어령은 딸 이민아 목사를 잃었다. 손자를 잃고, 딸을 잃고… 가슴에 묻은 아픔이 커서였을까, 그 역시 병을 얻었다. 2년이 지났다. 수술 후 회복한 그가 처음 한 일은 ‘책’을 낸 일이다. 그다운 복귀이지만, 내용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그가 남은 자본주의의 희망이라고 말한 것은 그의 딸이 남긴 ‘생명’이었다.


	이어령


이 늙은 해녀는 이어령(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장, 평론가, 언론인, 이화여대 명예교수, 초대 문화부 장관)이다. 그를 소개하는 여러 수식이 있지만 그는 자신을 ‘해녀’라고 소개한다. 그는 평생을 지식의 바닷속을 탐구했다. 매번 더 깊이, 더욱 깊이 들어가 2000년대에는 창조의 싱싱함을(<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생각 깨우기> 등), 1980년대에는 우리의 눈으로 아시아를 보는 신선함을(<축소 지향의 일본인>, <한중일 문화 코드 읽기 비교 문화 상징사전>, <이어령의 삼국유사 이야기> 등), 1960년대에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문학을 읽어내는 새로운 시각을(<저항의 문학>,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등) 보여주었다.

지식의 거장, 시대의 멘토, 창조의 아이콘…이라 불리던 이 거인의 어깨가 한없이 작아 보일 때가 있었다. 2012년, 그의 맏딸 이민아(1959~2012) 목사를 병으로 잃었을 때다. 이어령의 딸답게 어릴 적부터 수재 소리를 듣던 딸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조기 졸업하고 미국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캘리포니아 주 검사, LA 부장검사 등을 지냈다. ‘아버지 못지않은 딸’로 부모의 자랑이었는데 2009년 목사 안수를 받는다. 그전까지 ‘성공의 탄탄대로’를 걸었던 딸이 울면서 지냈을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아비가 주지 못한 사랑을 준 ‘아버지’는 누구일까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저의 아버지는 유명한 분이십니다. 저는 그 사실이 부담스러웠어요. 아버지의 딸답게 살려고 애쓰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아버지가 주신 것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받은 거지요. 다른 아이보다 공부도 잘해야 하고, 말썽도 부리면 안 되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면 안 되고 항상 성과 지향적 삶을 살았던 거 같아요. 제가 좋은 성과를 내면 아버지가 저를 딸로서 인정하고 사랑해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저를 사랑해주시지도 않을 것 같았어요. 저에게는 늘 아버지의 체면을 제가 손상시키게 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고요.”
-이민아 <땅끝의 아이들>


그 딸이 만난 ‘아버지’는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았던, 또 다른 ‘아버지’를 신자가 되게 했다. 내가 주지 못한 사랑을 주었다는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파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문턱을 넘었다. 딸은 떠났지만, 딸이 남기고 간 생명이 유언처럼 남았다. 그 ‘생명’이 다름 아닌 이번 책의 화두다. <생명이 자본이다>는, 자본주의의 바다를 살게 될 이들에게 남기는 어느 나이 든 해녀의 ‘비밀 지도’다. 덕분에 이 책의 출판기념회는 그의 팔순 잔치와 함께 치러졌다. 앞서 간 딸에 대한 미안함으로 2년을 미룬 잔치였다.

건강은 어떠세요? 팔십이 넘은 사람들은 아픈 게 정상이죠, 안 아픈 게 비정상이고.(웃음) 저는 작년에 (뇌에 고인 피를 뽑아내는)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나이나 늙음을 잊고 지냈어요. ‘이전 같지 않다’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어요. 지인 중에 누군가가 수술실에 들어갈 때 마음이 언짢았던 적은 있어도, 내가 입원이나 수술을 한 적은 없었거든요. 내가 수술실 들어가보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들어갈 때도 나올 때도, 혹시 ‘말을 못 하게 되면 어쩌나’, ‘여기가 마지막이면 어쩌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에 정리를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펴낸 책이 <생명이 자본이다>예요.

출판기념회를 팔순잔치랑 같이하신 게 뜻깊네요. 책 발행 즈음에 팔순 잔치와 겸했어요. 그간에 많은 책을 냈지만, (이번 책은) ‘난산’이었어요. 말하자면 조산으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나온 책이나 다름없어요. 개정판을 내야 되지 않겠는가 생각해요.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내 창작 과정이 공개되는 거죠. 지금은 제가 메모 식으로 엮은 노트를 펴낸 것이거든요. 아르키메데스 식으로 말하자면 ‘유레카!’의 단계까지만 써놓은 거죠. ‘생명’을 발견했고, 그 생명의 효용에 대해 말하기 전인 ‘유레카!’라고 외치는 순간인 거죠.

보통은 일생에 한 번 맞기도 힘든 ‘유레카!’의 순간을 또 맞이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금맥을 찾으면 우리는 노다지(노터치), 외국인들은 유레카!라고 말했죠. 금은 변하지 않는 유일한 물질이에요. 모든 육체는 쇠하고 바위도 부식하는데, 금만은 ‘영원’을 담고 있거든요. 그러나  살아 있지는 않아요. 이 금을 맡겨두었다는 증서가 처음의 화폐였고요. 금은 그대로인데 화폐는 계속 증식하고 있어요. 세계는 유한한데 돈은 생명도 아닌데 증식하고 있다는 거죠. 경제학자가 아니어도 화폐경제가 얼마나 자연 질서를 위배하는지 알 수 있어요.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실체가 없는 화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거죠.


 “…늙은 해녀는 마지막 결심을 합니다.
한참 동안 숨 고르기를 하고 마지막 숨을 모아 자맥질을 할 것입니다.
백 번 천 번 가보았던 물길 속을 따라 젊은 날의
황홀한 기억의 장소에 당도할 것입니다.
아직 그 자리에서 자라는 싱싱한 생명체를 보고
떨리는 손을 뻗어봅니다.
하지만 그 손이 닿기 전에 먼저 숨이 막힙니다.”

-<생명이 자본이다> 서문 중


딸이 남기고 ‘생명’, 그리고 내 인생의 여인들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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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자본이다>는 서구 사회의 리먼 쇼크를 보면서 자본주의가 한계에 이르렀다고 본 저자가 앞으로 ‘자본주의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책이다. 시대를 한 걸음 앞서 보는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 가장 먼저 도전하는 사람)”으로 일생을 살아왔지만, 이번 책은 남다르다.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딸의 죽음이 있었고, 그 자신도 생명과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쓴 책이다. 무엇이 그를 ‘결국은 생명’이라는 명제로 이끌었는지 궁금했다. 

각 챕터 말미에는 ‘어머니께’ 쓰는 시가 나와 있던데요. 우리는 다 어머니의 몸에서 나왔어요. 생명의 근원이죠. 어머니라는 말에는 창조의 원천이 들어 있어요. 어머니의 모체, 자궁에 대한 그리움이죠. 여기에 제가 엎어둔 ‘화투장’은 뒤집지 않으면 몰라요.(웃음) 저는 이 책을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운문도 아니고, 논문도 아닌’ 그런 느낌으로 쓰고 싶었어요. ‘운문이 있는 인문학 논문’은 고대 희랍 사람들이 글을 쓰던 방식이에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시로 이야기한다는 거죠. 경제학으로 계수할 수 없는 부분은 시로, 대화로, 경험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어머니 말씀을 하셔서 하는 말인데, 선생님께서는 돌잡이로 ‘책’ 고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가부장적 성격이 강한 사람이에요. 그럼에도 글 쓰는 나는 ‘여성 원리’를 갖고 있어요. 불의 언어와 물의 언어가 있다면, 어머니는 ‘미음(ㅁ)’ 물이고, 아버지는 ‘비읍(ㅂ)’ 불이란 말이에요. 저에게는 물과 불이 동시에 있어요. 초기에 쓴 <저항의 문학> 같은 불의 언어죠. 나중에는 감성적이고 직관적인 물의 언어로 바뀌었죠.

부인이신 강인숙 여사(영인문학관 관장, 영인은 이어령의 ‘영’과 강인숙의 ‘인’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님과는 부부로, 또 문학인으로서 평생의 파트너로 보여요. 에로스는 소유의 욕망일 뿐, 사랑의 욕망이 아니에요. 인간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싶어요. 소유 없는 사랑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가페’인 거고요. 강인숙은 물론 제 반려자이고 파트너이지만, 제가 책 읽는 시간에 제 아내와 제 아이들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어요.

자궁과 같은 절대 고독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일까요. 누가 나에게 가장 후회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가 글 쓰는 시간, 책 읽는 시간에는 가족들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때의 나는 ‘고독’ 속에 있었거든요. 가족과의 관계, 국가와의 관계에서 모두 빠져나와서, ‘절대 자유’ 상황에서 쓰는 거예요. 그건 굉장히 외롭고 갖고 싶지 않은 자유예요. ‘이 쓴 잔을 피하게 하소서’라고 하고 싶은 심정인 거죠. 글 쓰는 사람들은 ‘귀양 온 신선’이나 다름없어요. 자기가 쓴 글, 그 세계에 모든 책임을 지는 거예요.

작가라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네요. 만약 소설이라면, 등장인물이 죽을 때 눈물을 흘리며 죽이는 거예요. 실제로 살인을 하는 거라고. 남이 죽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 결정권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얼마나 무거운지 몰라요. 참된 시인이나 소설가는 글을 쓰는 순간 모든 생명을 투영하는 거예요. 그게 성공했다면 상관없는데, 이제와 돌아보건대 ‘글 같지 않은 글’ 쓰느라 아내와의 시간, 딸과의 시간, 아들과의 시간을 빼앗았다고 생각하면 죄라고 생각되는 거죠.


생명의 詩/ 빈 운동장의 경주

어머니 운동회 날입니다.
줄마다 만국기가 휘날리고 있는 하얀
운동장을 달렸습니다. 햇빛이 너무 부셔
모자 차양을 세우고 달렸습니다.
숨이 차고 발이 떨어지지 않아도
심장이 터지라고 뛰었습니다.
……
오늘에서야 압니다. 어머니. 운동회가 끝났는데도
운동모자와 런닝 셔츠를 벗었는데도 나는
지금도 뛰어야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누가 호루라기를 불어서가 아닙니다.
목숨이 있어서 바람이 불어서 숨차냐고
어머니가 물으셔도
나는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생명의 나무들과
함께 경주를 합니다.

-<생명이 자본이다> 서문 중


누군가 ‘이어령을 위한 변명’을 한다면 그건 본인에게나 가족에게나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이 아니었을까요. 그건 내가 외로운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외로울 때 나보다 더 외롭게 만들었구나 싶은 거죠. 열 배 스무 배가 아닐까 싶어요. 딸을 잃었을 때나 아내와 아들을 볼 때 내가 이들에게 무슨 짓을 했나… 생각하면 (눈시울 붉어지며) 변명할 여지가 없어요.

혹시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이 언제인지요. 딸아이가 인형을 안고 와서 “아빠 굿나잇~” 할 때 한 번 돌아봐주면 되는데, 글 쓸 때는 그게 안 돼요. 마감이 다가오면 “응 그래, 잘 자 잘 자” 하고 얼른 이걸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은 하루 종일 못 보던 아버지를 기다리거든요. 그럼에도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할 때 민감한 아이는 굉장한 상처를 받았겠죠.

이제 와 시간을 돌이킬 수도 없다는 게 가장 가슴 아프다는 말씀이시군요. 아들은 그래요, 다른 아버지도 다 그렇다고. 그러나 그건 아들이라 그런 거고, 딸의 감성은 또 달라요. 아버지 사랑을 받았다는 느낌과 그렇지 않은 느낌은 다르거든요. 또 남의 집에 가면 아버지가 아이들 안아주고 그러는데, 우리 딸은 안겨보지 못한 거예요.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요. 그때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그 “굿나잇”의 순간은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거예요. 그걸 느끼니까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걸 글로나마 풀어낼 수 있다는 게 마지막 희망이에요. 딸의 말마따나 글이 ‘마지막 희망’인 거죠. 글 쓰는 사람은 나락에 떨어져도, 한 걸음은 더 디딜 수 있었다는 거죠. 글을 통해서.

글을 통해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많으시잖아요. 그 창작의 순간, 창조의 기쁨이 있어 제가 정치나 명예에 대한 욕심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거죠. 평생 어느 정당이나 광고 등의 활동은 해본 적이 없어요. 권력이나 돈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 그걸 위해 살아오지도 않았어요. 그 외로움이 없었다면 세속에 대한 탐심에 젖었을지도 몰라요. 그런 유혹에 휘둘릴 수 없는 내 안의 브레이크가 있었던 거죠. ‘아담의 순수’가요. ‘절대 자유를 누리는 순수한 나’를 잃고 싶지 않았던 거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도 많고 주변에 사람도 많은데 무슨 소리냐고 해요. 그런데 저는 철저히 혼자였어요.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고독이었죠.


여든에 알았다, 결국은 사랑인 게야


	이어령

따님(고 이민아 목사) 역시 나중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알았다고 썼어요. 저서를 보면 ‘아버지의 사랑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몰랐다’고 고백하고 있죠.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표현할 줄 모르고 서로 몰랐다는 게 상처였던 거예요. 신의 사랑도 마찬가지예요. 없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거죠. 저에게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실제로 아버지와 상처 때문에 3년간 말을 하지 않았던 한 딸이 우리 딸의 글을 통해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대요. 엉엉 울면서 ‘아빠 사랑해’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1분도 되지 않아 아버지에게 “나둥~”하고 왔다는데 그게 아빠예요. 3년 동안 얼마나 기다렸으면 1분도 안 돼서 응답이 온 거죠.

서운하지는 않으셨어요? 따님이 ‘이어령의 딸로 사는 것이 힘겨웠다’고 할 때요. 나에게서 못 받은 사랑을 신에게서 받아 남들에게 전해주는 줄 알았더니, ‘아빠인 나와의 회복이 신과의 회복이고 이게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회복을 전해주는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은 그게 유일한 위로예요.

시대의 어른인데,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지금도 내가 고백할 게 있다면, ‘내가 딸을 진실로 사랑하지는 못했구나’라는 거예요. 아이가 세상을 떠난 뒤에 자꾸 떠오르는 게 여러 군데서 ‘내가 정말 사랑했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나, 이렇게 될 수 있었나’ 싶은 장면이 떠올라요. 애가 이렇게 아파하는데, 나는 그걸 정말 내 몸처럼 느꼈나. 한번은 다 같이 밥을 먹고 나왔는데 우리 애가 춥다고 해요. 저는 그때도 얘가 암 환자라는 걸 잊고 “다 같이 추운 걸 왜 그러니” 한 거죠. 얘는 성한 애가 아닌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말을 한 걸 떠올리면 견딜 수가 없어요.

왜 공감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자책이시군요. 애가 눈이 아팠을 때도 그래요. 어느 날 아이 컴퓨터를 쓰려고 보니까 아이콘을 크게 해놓아서 내가 바꿔놨어요. 작게. “너 컴퓨터 쓸 줄 모르냐” 그랬더니, 딸이 “아빠는, 내가 안 보여서 그런 건데…” 그러는 거예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딸이었는데, 내 사랑이 진짜였을까 싶은 거죠.

하지만 ‘지성에서 영성으로’ 돌아서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따님의 실명’이었고, “딸이 다시 한 번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신에게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이, 당장 모니터를 보면서도 아이의 눈이 아니라 ‘내 눈’으로 본 거죠. 내가 아무리 가까워도 딸일 수는 없는 거예요. 근데 신은 그걸 하거든요. 대신 아파주고, 대신 죽어주거든요. 그게 내 한계인 거죠. 인간임에 대한 회의. 나에게는 그게 최고의 사랑이었는데, 아이의 아픔을 느끼지 못했구나. 간혹 잊었구나. 그걸 느끼니까 너무 마음이 아파요. 아내에게도 그래요. 한 여자를 열심히 사랑한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구나.

서문에 ‘해녀의 비유’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어요. 나이 든 해녀의 심정으로 쓴 글이에요. 이 글은 지도죠. 대개는 내 지도대로 안 가고, 성게 멍게 따고 만족하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전복을) 딸 거죠. 앞으로는 반드시 따죠.

직접 따지 않고 아껴두신 이유가 있을까요. 나는 딸 수가 없는 게, 사랑하는 님이 오면 주려고 남겨둔 거거든요. 앞으로 이걸 제대로 하려면 경제학, 물리학, 화학을 제대로 해야 해요. 지금부터 아리스토텔레스를 하려고 해도, 평생을 해도 모자라요. 저희는 전쟁 세대이기 때문에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어요. 제가 박사라고 하지만, 실제로 배운 것은 적어요. 혼자서 배웠어요. 서양에서는 어릴 적부터 희랍문학부터 쌓아 올라오거든요. 제가 만드는 지도는 그래서 감성과 직관과 아이디어의 힘을 빌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럼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날아야 해요. 날자, 살자. 이 글을 제가 근사한 논문으로 쓰지 않은 이유는, ‘날개’가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이미 나온 이론, 남의 다리로 걷지 말고 우리 날개로 날아보자는 거예요.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지혜’를 이용해보자는 거죠. 이 지혜를 동물들도 가지고 있어요. 번데기는 나비가 되기 전에 먹이가 돼요. 버마제비(사마귀)는 교미를 한 후 수컷을 잡아먹어요. 새끼에게 줄 영양분을 위해서죠. 자연에서는 먹는 놈보다 ‘먹히는’ 놈이 더 고차원이에요. 먹히는 열매가 씨앗을 퍼트리거든요.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희생의 지혜’를 갖고 있어요. 먹고사는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거죠. 생명 속에 답이 있습니다.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취재 유슬기 기자 | 사진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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