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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육영수

육영수여사 소통법④ 육 여사의 결벽, "아버지는 후덕한 분이 아니었어요"

by 달빛아래서 2014. 8. 14.
  • 육영수 소통법-가까이서 본 인간 육영수 이 카테고리의 다른 기사보기

    ④육 여사의 결벽, "아버지는 후덕한 분이 아니었어요"

  • 김두영
    전 청와대비서관
    E-mail : dykimriver@naver.com
    1940년생.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를 졸업하고 미 위스콘신주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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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13 14:05 | 수정 : 2014.08.13 15:33

 

1970년 7월 25일 남산 어린이회관 개관식 때의 일이었다. 서울 시내 국민학교 교장과 어린이 대표들이 초청된 가운데 개관식이 성대히 거행되고 있었다. 식순에 따라 어린이회관 건축에 협조한 20여 명에게 설립자인 육영수 여사께서 직접 감사패를 전달하게 되었다. 사회를 보던 내가 감사패 문안을 읽고 육영재단 상임이사였던 정우식씨가 감사패를 하나씩 육 여사에게 넘겼다.
1970년 7월 25일 남산 어린이회관 개관 테이프를 끊는 설립자 육영수 여사.(윤치영, 곽상훈, 김성곤씨와 양택식 서울시장이 함께 서 있다.)
1970년 7월 25일 남산 어린이회관 개관 테이프를 끊는 설립자 육영수 여사.(윤치영, 곽상훈, 김성곤씨와 양택식 서울시장이 함께 서 있다.)
그런데 감사패를 잘못 집는 바람에 받을 사람과 상패의 이름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그냥 전달했으면 식이 끝나고 나서 서로 바꾸어 찾아갈 수 있었을 텐데 육 여사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이름이 다르다고 정 이사에게 되돌려 주었다. 당황한 정 이사가 감사패를 찾느라 이것저것 마구 섞어놓은 바람에 계속 감사패 이름과 사람이 틀려 나갔고 급기야 차곡차곡 쌓아둔 감사패가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식장 안에 있던 어린이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KBS-TV가 그 행사를 중계했는데 개관 첫 날 어린이회관은 어린이들에게 크게 망신을 당한 셈이 되고 말았다.

육 여사는 천성적으로 결벽했을 뿐 아니라 모든 일에 대해서도 거의 완벽주의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꺼림칙하거나 의심을 살 만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이를 밝히고 넘어가는 성격이었다.

“아버지는 후덕한 분이 아닙니다”

1972년 10월 25일자 모 경제신문에 대한공론사(大韓公論社)에 재직했던 김 모씨가 육영수 여사의 가친 육종관(陸鍾寬)씨에 관한 짤막한 글을 기고한 일이 있었다. 그 내용은 충북 옥천의 토호인 육종관씨는 천성이 착하고 후덕하여 같은 마을에 사는 어려운 사람들을 늘 보살피고 도와주어 인심을 크게 얻었다는 것이었다.

신문기고를 우연히 읽은 대통령 영부인께서 나를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후덕하고 인심 좋은 분이 아니었어요. 남의 사정을 이해하고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셨던 분은 어머니였어요. 아버지를 잘 아는 옥천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면 무어라고 하겠어요. 그분이 잘못 알고 계시니까 글 쓴 분에게 정중하게 전화를 해서 글을 써주셔서 고맙지만 아버지는 그런 후덕한 분이 아니었다고 바로 잡아드려요.”

나는 즉시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영부인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 아무리 아버지의 일이라 하더라도 틀린 것은 바로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육 여사였다. 나는 그 후 나로부터 그런 전화를 받은 김씨가 그때 육 여사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육 여사가 결재를 하지 않은 이유

청와대 민정비서실에서는 영부인 앞으로 온 민원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고할 때 ‘영부인’ 결재란을 만들어 서류를 가져 왔었는데 영부인께서는 그 서류를 다 보고 나서도 그 난에 결재를 하지 않고 그냥 보고서류만 읽어보고 관계 비서실로 돌려보냈다.

대통령 부인은 법적으로 공적인 서류에 결재할 결재권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공사의 구별이 철저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민정비서실에서는 부속실 직원이 제멋대로 결과 보고토록 지시한 것이라는 오해가 생겼다. 부속실 민원처리를 맡았던 나로서는 영부인에게 건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정비서실에서는 열심히 조사해서 보고를 했는데 영부인께서 사인을 안하시니까 제가 중간에서 제멋대로 민원처리를 하면서 장난치고 있는 줄 알고 있으니 그저 보셨다는 뜻으로 사인을 해 주십시오”라고 요청을 했다. 그 후부터는 마지못해 결재란에 사인을 했다.

영부인 기증 약품 증발
한영우 박사.
한영우 박사.
스웨덴 왕실 의사로 일했던 한영우(韓映愚) 박사라는 한국인 의사가 있었는데 이분은 매년 종합비타민을 육 여사에게 보내 나환자들이나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게 하였다. 1972년에 영부인께서 많은 양의 약품을 경기도에 넘겨주었는데 그 전달을 내가 맡아서 했다. 그 며칠 뒤 “육 여사가 보낸 비타민이 증발됐다”는 기사가 동아일보 석간에 실렸다.

대통령 지시로 내무부에서 진상조사를 해보니 상당량의 비타민이 구호대상자에게 전달되지 않고 경기도지사 관사에 은닉되어 있었음이 밝혀졌고 김현옥(金玄玉) 내무장관의 건의에 따라 경기도지사가 다음날 면직되었다.

영부인은 이 문제를 두고 여러 차례 나에게 아쉬움을 표시했다. 내가 경기도에 의약품을 인계할 때 단단히 주의를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하셨다. 또한 영부인의 친서라도 같이 보냈더라면 그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능력 있고 아까운 사람이 잘렸다”고 미안해하고 아쉬워하는 것이었다. 나 또한 무척 아쉬운 마음이었다. 나는 경기도청 사회과 담당자를 청와대 본관으로 불러 창고에 보관된 비타민 수십만 정을 인계할 때 대통령 영부인의 기증품이 그렇게 증발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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