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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육영수

육영수여사소통법⑥ "과잉충성 그만해요" 아부를 싫어했던 육 여사

by 달빛아래서 2014. 8. 19.
어느 날 경회루에서 육영수 여사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양지회 주최로 경로잔치가 열렸다. 코미디언 남보원씨를 비롯한 연예인 수명이 나와 노래와 코미디로 노인들을 즐겁게 했다. 악단 연주소리와 가수들의 노랫소리가 가까운 청와대까지 들렸던 모양이었다. 경호실에서 경복궁 사무실로 연락이 오기를 “각하 집무실에 노랫소리가 들리니 노래를 삼가 달라”는 것이었다. 양지회 총무 권옥순(윤주영 전 문공장관 부인) 여사가 영부인께 그 말을 전했다. 육 여사는 괜찮으니 그냥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행사를 다 마치고 나서 나는 영부인을 모시고 청와대로 돌아왔다. 현관에서 경호과장이 나와 인사를 했다. 영부인은 그에게 “거기서 연락했어요?”라고 물었다. 그가 어물어물하자 “집무실에서 뭐가 들린다고 그래요”라고 언짢게 말했다. 2층 비서실장실에서 내려오던 김성진 대변인과 마주친 영부인은 “그렇게 과잉충성하지 말아요”하는 것이 아닌가. 김 대변인은 영문도 모른 채 얼굴을 벌겋게 하고 서 있었다.
경회루에서 육영수 여사가 베푼 경로잔치
경회루에서 육영수 여사가 베푼 경로잔치
어느 날 육영수 여사는 나에게 이런 불만을 털어놓았다.
“청와대에서 발표하는 대통령 관련 기사를 보면 ‘김정렴 비서실장과 박종규 경호실장이 대통령을 수행했다’는 내용이 항상 붙어 다니는데 국민들이 읽으면 식상할 것 같아요. 대통령께서 지방에 가시면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은 으례 수행하게 되어 있는데 그 사실을 꼭 기사로 보도를 해야 되나요. 그러지 않아도 대통령 측근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그런 사람들은 얼마나 지루하게 느끼겠어요.”

나는 이 말을 김성진 청와대 대변인에게 전했다. 김 대변인도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대통령 측근에서는 누구도 그 같은 문제점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항상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애썼던 육영수 여사의 눈에는 그것이 보인 것이다. 그 후로는 그런 식의 기사가 실리지 않았다.

대통령의 생신일

박 대통령이나 영부인은 면전에서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면 매우 겸연쩍어 했으며, 아부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생신일이 음력으로 9월 30일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는 것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아서 음력이 아닌 양력 9월 30일을 생일로 했기 때문에 그날은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을 대표해 화분을 들고 청와대로 올라와 축하인사를 하고 내려갔다.

어느 핸가 양력 9월 30일 모 장관이 대통령께 보고를 마친 다음 시간이 늦어서 박 대통령 내외분과 청와대에서 저녁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그 장관은 9월 30일이 매우 길한 날이며 이날 태어난 사람은 위인이 많다는 등 사주풀이를 하고 돌아갔다. 그날은 박 대통령의 진짜 생일이 아니었다. 이튿날 육 여사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남자들은 왜 그렇게 아부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웃었다. 1917년 음력 9월 30일은 양력으로는 11월 14일이다. 그 얼마 후부터는 박 대통령은 양력 11월 14일을 공식 생신일로 삼았다.

육 여사는 혹 부속실 직원들이 영부인을 칭찬하는 말이라도 하면 빙긋이 웃으면서 “속에 없는 말 하지도 말아요”라고 말하곤 했다.
전시회를 관람중인 육영수 여사.
전시회를 관람중인 육영수 여사.
교향악단 공연 취소

1972년 가을 국립교향악단 정기 연주회에 박 대통령께서 나가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영부인께 “각하께서는 축구시합 구경만 가시고 예술 활동에는 관심이 없으신 것 같다”는 음악인들의 불평을 전해 드렸더니 두 분이 상의하셔서 그해 가을 국립관현악단 정기연주회에 가시기로 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당일 연주회는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가 아니라 국립합창단과 소년 합창단 등을 대거 동원한 교성곡(交聲曲)이란 이름의 대규모 합창제였다. 막이 오르자 음악연주 대신에 사회자가 대통령 업적을 칭송하는 시를 읊고 있었다. 청와대 정무비서실과 문공부 당국자들의 과잉충성이 빚어낸 사고(?)였다. 옆에서 보니 쌍안경으로 무대를 꼼꼼히 살피던 박 대통령의 눈꼬리가 올라가면서 불쾌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관람을 마치고 연주자들을 찾아가서 격려한 뒤 청와대로 돌아온 박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린이합창단은 왜 동원했느냐 그런 연주회는 당장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문공부 계획에 따르면 그 연주회는 지방순회까지 예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박 대통령의 모처럼의 교향악단 참관은 그 후 다시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통령이 매년 국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를 참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영부인께서 나에게 모처럼의 건의가 이렇게 돼서 안됐다는 위로의 말씀을 하셨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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