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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

'승영이의 소원'이 만든 행복한 요양원

by 달빛아래서 2014. 10. 22.
  • '승영이의 소원'이 만든 행복한 요양원

  • 안준용
    국제부 기자
     

[성수대교 붕괴 20년… 14가지 소원 남기고 간 女大生]

-보상금 전액으로 '승영 장학금'
89명 장학생 중 최만재 목사 "복지마을 소원은 내가 대신…"

-쉼터 어르신 중 資産家가…
3년간 모신 고집 센 할아버지 용인 땅 기증 "요양원 짓자"

이승영씨.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풀 내음 나는 시골길 끝자락에 널찍한 요양원이 하나 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 26명과 이들을 돌보는 15명이 함께 모여 사는 '작은손길 공동체'라는 곳이다. 이곳을 일군 최만재(57·목사)씨는 해마다 10월 21일이 되면 20년 전 숨진 스물한 살 여대생의 이름을 되뇌며 기도를 올린다. 그를 위한 기도는 한결같다. "승영씨, 당신의 이름은 '오늘 하루 제가 무엇이 부족했나' 되묻게 하는 이름입니다."

이승영씨는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서울교대 3학년생이었다. 그는 교생 실습 닷새째, 버스를 타고 강북에 있는 초등학교로 출근하던 길에 다리 상판과 함께 2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당시 30대 회사원이었던 최씨는 승영씨의 이름도 얼굴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최씨의 삶에 두 번의 선물을 선사했다. 가난한 신학생이던 그를 목회자로 이끌고, 기댈 곳 없는 노인들을 모시던 50㎡(15평) 무허가 판잣집을 대지 3159㎡(956평)의 번듯한 요양원으로 변신케 한 기적이었다.

최씨는 나이 마흔에 공부를 시작한 늦깎이 신학생이었다. 쪽방에 살면서도 2000년부터 아내 김영샘(52)씨와 인천 부평 뒷골목에서 매주 무료 급식을 했다. 파지를 주워 연명하던 노인 11명을 모시고 무허가 건물에 월세 20만원짜리 세를 얻어 '작은손길 공동체'를 세웠다. 학비가 없어 힘겨워하던 그는 2002년 "승영장학생으로 선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승영씨의 '14가지 소원' 이야기도 그때 처음 들었다. 딸의 유품을 챙기던 승영씨 어머니 김영순씨가 딸의 일기장에서 '내가 일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란 14가지 소원을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대신 이루고 있다는 뭉클한 이야기였다. '한 명 이상 입양한다, 장학금을 만든다, 이동도서관을 강원도에 만든다, 복지마을을 만든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

승영씨 어머니는 딸의 사고 보상금 2억5000만원 전액을 남서울교회에 기탁해 가난한 신학대학원생을 위한 장학금을 만들었다.

최씨는 4학기 동안 장학금을 받아 2003년 대학원을 마치고 목회자가 됐다. 그는 "승영씨의 소원 중 '복지마을을 만든다'는 꿈은 내가 꼭 대신 이뤄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무허가 보금자리는 불안하고 불편했다. 최씨의 아내는 "남편은 매일 새벽 '우리 어르신들 편히 지낼 곳을 마련해달라'는 기도를 올렸다"고 했다.

하늘의 승영씨가 도운 것일까. 또 하나의 기적이 시작됐다. 그가 모시던 80대 구씨 할아버지가 어느 날 "내 고향 용인으로 같이 좀 가자"고 최씨를 조르기 시작했다. "가족도, 갈 데도 없는데 재워달라"며 와서는 3년간 함께 지내온 고집 센 할아버지였다. 최씨는 "마지막 소원 들어 드리자는 심정으로 고향으로 모시고 갔다"고 했다. 고향 땅을 밟은 구씨 할아버지가 거짓말 같은 얘기를 꺼냈다. "여기 야산과 논밭이 다 내 것이네." 할아버지는 십수억원대 자산을 가진 이 동네의 유명한 갑부였다. 최씨는 "아들딸과 떨어져 살던 어르신이 외로움 때문에 우리 공동체를 찾아오셨던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9일 경기도 용인시의 작은손길 공동체 요양원에서 최만재(57·왼쪽 맨 끝) 원장과 이곳에 사는 노인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15평 무허가 판잣집에서 어엿한 복지마을로 - 지난 19일 경기도 용인시의 작은손길 공동체 요양원에서 최만재(57·왼쪽 맨 끝) 원장과 이곳에 사는 노인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이명원 기자
구씨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 당신의 기도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 산과 논밭을 모두 목사님과 우리 공동체 명의로 돌리고 싶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최씨가 만류했지만, 할아버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최씨는 논밭 대신 공동체 건물을 세울 수 있는 야산 일부만 받았다. 작은손길 공동체는 기적처럼 당시 정부 지원금 2억8000만원을 받아 새 보금자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구씨 할아버지가 땅을 기증하겠다고 한 지 3년 만인 2007년 11월, 지금의 터에 건물 면적 633㎡(192평) 규모의 '작은손길 공동체 요양원'이 탄생했다.

구씨 할아버지는 부지 기증 후 자녀들 집에서 투병 생활을 하다 2006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숨을 거두기 전 "요양원이 생기면 돼지 잡아 마을 잔치라도 하라"며 건넨 100만원과, 최씨 부부를 억지로 금은방에 데려가 직접 골라준 5돈짜리 금반지가 할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지난 19일 저녁 요양원 거실은 TV 앞에 둘러앉은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장정자(77) 할머니는 "깨끗하고 따뜻한 이곳에서 새 친구들까지 만났으니 말년에 축복을 받은 셈"이라 했다. 초기 치매를 앓고 있는 장원순(82) 할머니도 거들었다. "기적이지… 고마운 일이죠…." 최씨는 "구씨 할아버지 덕에 승영씨에게 약속했던 진정한 '복지마을'을 완성할 수 있었다"며 "이것도 승영씨가 하늘에서 꾸준히 기도하고 응원해준 덕"이라 했다. 최씨 내외는 요양원을 운영하며 무료 급식도 15년째 계속하고 있다. 부인 김씨는 매년 10월만 되면 가장 힘들 때 힘이 돼준 승영씨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승영장학생 89명이 지금도 각지에서 묵묵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승영씨라는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20년이 지나서도 계속 열매를 맺고 있는 셈이죠. 살아있는 우리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데 진정 살아있는 건 그분 아닌가 싶어요."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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