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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

의사들도 두 손 든 시한부 삶, 27년간 건강 지킬 수 있었던 건

by 달빛아래서 2014. 10. 5.
  • 의사들도 두 손 든 시한부 삶, 27년간 건강 지킬 수 있었던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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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홍렬 블로그
    주말뉴스부 차장
    입력 : 2014.10.04 07:12

시한부 1년 선고, 산행·캠핑으로 27년간 건강한 삶… '自然 전도사' 박상설
59세, 갑자기 찾아온 病
회사 임원으로 연일 밤샘… 귀에서 '왱~' 회사서 쓰러져
의사는 방법 없다며 포기… "병원 침대서 죽을 순 없다"
길 위의 삶, 죽음을 생명으로
몸 못 가눈채 지팡이만 의지… 세계 19개국 오지 떠돌았죠
걷고, 또 걷고, 텐트서 숙식… 어느새 팔다리에 힘이…
"퇴직 후의 나태함을 떨쳐내세요
대우받고 동정받으며 사는 삶이 사람을 더 나이 먹게 만듭니다"
천개의 산·숲·들판을 건너…
米壽에 가까운 나이지만 오토캠핑 강사, 레저 칼럼 써
"내일보다 오늘이 젊다… 걷다가 쓰러지는게 저의 꿈"
캠핑, 놀이가 아닌 교육의 場
"가족이 함께 텐트 세우면서 대화하고 깊이 느끼게 돼…
술만 먹던 주유소 사장이 충실한 가장으로 변하대요"
'자연의 사치' 누리세요
"깊은 산중서 황홀한 노을과 별 쏟아지는 모습을 보세요
자연만이 사람을 바꿉니다… 산다는 것은 발끝에 달렸죠"

1987년 9월 26일 오후 4시 서울 서초동의 한 빌딩. 중년의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당시 59세. 회사 임원인 그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고 있어 며칠씩 밤샘하는 건 다반사였다. 일 중독자이자 완벽주의자였던 남자는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하루 2갑씩 담배를 피워 댔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도무지 어떤 병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의사들을 찾아가봐도 마찬가지였다. 한 의사는 1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치료해보자는 말도 없었다. 그는 의사들도 두 손 들어버린, 대책 없는 시한부 인생이 됐다.

그는 한 가족의 삶을 어깨에 짊어지고 앞만 보며 달려가던 가장(家長)이었다. 세 자녀의 아버지였다. 회사와 일이 자신의 인생인 줄 알았던 남자였다. 그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쓰러지던 날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강원도 홍천 오대산 기슭 자작나무숲에 텐트를 친 박상설씨가 책을 읽으며 캠핑을 즐기고 있다.
강원도 홍천 오대산 기슭 자작나무숲에 텐트를 친 박상설씨가 책을 읽으며 캠핑을 즐기고 있다. 27년 전 의사도 포기한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미수(米壽) 가까운 노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꼿꼿하고 열정이 넘쳤다. 그는 “자연 속 삶이 병을 이기는 생명을 주었고, 나 자신을 발견하게 했다”고 말했다. / 이덕훈 기자

◇"산에 나를 내버렸다"

그로부터 27년. 그 남자를 지난달 16일 강원도 홍천 오대산 기슭의 주말 레저농원 캠프 나비(Camp Nabe)에서 만났다. 박상설(86)씨. 그는 머리에 두건을 쓰고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

―정신없이 살다 갑자기 쓰러졌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겠다.

"회사에서 쓰러진 후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병명을 알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심한 어지럼증에 토하기를 반복하고 대소변을 지렸다. 어떨 땐 내장까지 토하고 싶은 심정으로 방바닥을 할퀴며 몸부림쳤다. 사물을 보면 눈앞에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흐렸고 이중으로 겹쳐 보였다. 귀에서는 '왱' 하는 소리가 머리를 울릴 정도로 크게 들렸다. 평형감각이 안 맞아 비틀대는 증세도 계속되었다. 한 병원에서 뇌졸중일지 모른다는 막연한 진단을 내렸지만 병 부위를 찾아내지 못하니 치료할 수도 없었다."

―병명도 모른 채 아픈 건 더 괴롭고 답답했을 것 같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990년 미국으로 가서 캘리포니아 의과대학에서 진단을 받았다. 뇌간동맥경색(뇌졸중)이란 진단이 나왔다. 뇌간 동맥이 막히면 산소 공급이 중단되어 사망하는데, 내 경우는 다른 모세혈관을 통해 혈액이 들어가 겨우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혈관은 한번 막히면 평생 뚫리지 않고, 그때는 수술 방법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매일 아스피린을 한 알씩 평생 먹고 운동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등산을 하라고 했다. 사실상 치료 방법이 없다는 얘기였다."

―앞이 캄캄했겠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병원을 박차고 나왔다. 그때까지 살던 방식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접기로 했다. 평생 가족 먹여 살리느라 일만 해온 삶이었다. 사회적 지위도, 체면도 다 버려야 한이 풀릴 것 같았다. 가족에게 기대 집 안에 드러누우면 같이 망할 게 뻔했다. 차라리 나를 산에 버리기로 했다. 지팡이에 의지해 한 발씩 걸었다. 그때는 환자로 죽지 않고 여행자로 죽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아픈 몸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1년 6개월 동안 미국, 캐나다, 멕시코, 유럽 12개국, 인도, 네팔, 일본, 중국을 떠돌았다. 주로 오지를 찾아다니며 휴대용 텐트나 렌터카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오지 여행에 승부를 걸었다. 호텔이나 모텔 같은 데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길 위에서 몸을 혹사하는 쪽을 택했다. 자연에서 뒹구는 자에게 무슨 꾸밈이 필요한가. 머리카락도 박박 밀어버렸다."

―사서 고생하는 여행을 하겠다는 뜻이었나.

"놀러 간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나를 버리러 간 것이다. 길 위에서 모든 걸 해결하며 유목민처럼 살았다. 음식도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픈 몸이었다. 석양에 애수가 밀려들었다. 아마 그때 병원이나 집에 있었다면 나태해지고 진부해져서 의과대학 해부학 교실의 박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불편한 몸을 그렇게 혹사하면 병이 악화되지 않나.

"그 반대였다. 나는 길 위에서 죽었어야 할 몸인데 죽지 않고 오늘도 걷고 있다. 오지 여행을 떠난 지 3개월 만에 몸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게 됐다.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쩐지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기어코 살아야겠다는 열망이 용솟음쳤다.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기어코 해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밀려왔다."

―믿기 어려운 일이다.

"죽기 위해 떠돌았는데 오히려 살아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나는 덤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 절망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병명도 모르고 고통받을 때는 죽음을 합리화할 구실을 찾는 데 골몰했다. 사는 게 죽기보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쉬울 것도 아까울 것도 없었다. 아마 그래서 나 자신을 내버리듯 자연에 투신(投身)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뇌졸중이 당신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병은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스승인 것 같다. 투병하면서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보게 됐고, 최후를 각오해야 하는 순간에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박상설씨의 인천집 현관에 놓여 있는 등산화들.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박상설씨의 인천집 현관에 놓여 있는 등산화들.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 박상설 제공

◇죽기 위해 떠돌다 살아났다

박씨는 "자연에 몸을 던져 천 개의 숲과 산, 들판을 건너왔다"며, "자연 속에 파묻힌 삶이 병을 이기는 생명을 주었고, 나 자신을 발견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죽으러 길을 떠났다가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그는 이제 오지 탐험가이자 오토캠핑 강사, 레저문화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무엇보다 '자연 참살이'를 예찬하는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농원 캠프 나비는 홍천에서 양양으로 이어지는 국도 56번을 따라 오대산 북쪽으로 오르는 곳에 있는 샘골에 있다. 말이 농원이지 비닐하우스 농막 옆에 산더덕과 곤드레, 야생화가 산풀과 섞여 자라는 밭이 있을 뿐이다. 농원 이름인 나비는 '자연(Nature)'과 '존재(Being)'의 합성어로, '자연에서의 존재'라는 의미다. 겹겹 산으로 둘러싸인 농원 옆 골짜기에는 들국화, 구절초, 개미취, 산부추 등 야생화 천지다.

박씨의 집은 인천에 있지만, 주말은 물론, 수시로 이곳을 찾아 산에 오르고 밭을 일구며 캠핑을 한다. 자연의 품에서 가족 단위 인성교육 캠프도 연다. 그는 "자연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자연에서의 삶을 통해 지금까지 삶을 해체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다시 조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1년에 50번 이상 산에 오른다. 죽어라 걷고 죽어라 산에 오르는 '산꾼'이 된 것이다. 그는 "산다는 것은 발끝에 달렸다. 걷고 뛰고 발이 닳아 문드러져야 세상이 보인다"고 했다.

오대산 기슭에 있는 주말 레저 농원‘캠프 나비’이정표 앞에 선 박상설씨.
오대산 기슭에 있는 주말 레저 농원‘캠프 나비’이정표 앞에 선 박상설씨. 국내외 주요 도시까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그는 세계 각국 오지 여행을 하면서 병마를 극복했다. / 이덕훈 기자

◇집 안에 텐트 치고 살기도

6·25 전쟁을 전후해 너나없이 어렵게 살던 시절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부터 부모와 여동생 등 7명을 먹여 살리다가 결혼 후엔 아내와 세 자녀까지 11명을 부양했다. 그는 서울대공대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건설기계 기술사로 건설부와 건설업체에서 근무했다. 그때도 팍팍한 삶에서 도망치고 싶을 땐 산으로 갔다. 산은 언제나 그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맹목적인 산 사랑 덕에 그는 1967년 이미 경기 가평에 주말농원을 마련했고, 이후 강원도 인제 진동리(1986년)를 거쳐 2005년 홍천 오대산 기슭 샘골에 자리를 잡았다.

박씨는 일찌감치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야영을 하는 오토캠핑을 즐겼다. 장비가 변변치 않아 대부분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장비를 사용했다. 1960~70년대만 해도 아직 등산이나 캠핑을 즐기는 사람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산에서 농부를 만나면, "이 산골에 무엇 때문에 왔느냐" "팔자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1987년 뇌졸중 발병 이후에는 등산이 취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활동이 됐다. 그는 "평일 야간 산행도 하면서 죽기 살기로 산에 매달렸다"고 했다.

박씨는 우리나라 오토캠핑 1세대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오토캠핑 열풍이 불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강사로 활동하며 병마를 극복한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면서부터다. 오토캠핑 동호회에서 연락이 오면 어디든 달려갔다. 오토캠핑 전도사로 활동하던 시절엔 집 안에도 텐트를 치고 살았다. 상가 건물 3층 50여평을 빌려 실내에 텐트 3~4개를 쳤다. 침낭이 있는 텐트는 침실, 버너가 있는 텐트는 주방, 간이 의자가 놓인 텐트는 서재였다. 손님이 찾아오면 텐트 하나를 더 쳤다. 그렇게 해서라도 야외 생활의 좋은 점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는 "캠핑은 놀이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인성교육과 감수성 훈련을 위한 장"이라고 했다. 그는 캠프 나비에서 가족 단위 캠핑객들을 위한 인성캠프를 연다. 자연에서 병을 이기고 새 생명을 얻고 세상을 배운 경험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가족끼리 힘을 합쳐 텐트를 세우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지고 서로를 깊이 느끼게 된다. 방황이 치유된다고 할까. 실제로 캠프에 참가했던 많은 사람의 삶이 변했다. 술만 먹던 주유소 사장이 가족에게 충실한 가장으로 변했다. 고등학생들은 야외에서 밤이슬 맞으며 대화하다가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이들에겐 자연이 학교다."

박씨는 산삼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자연에서 고생하는 것만이 나를 키워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쉬지 않고 산에 오르는가.

"등산은 발을 빌려 몸으로 자연과 세상을 읽는 것이다. 다리를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뇌로 가는 에너지 공급이 활발해져 피로가 가시고 마음이 상쾌해진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마음이 답답할 때 걷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무턱대고 걷는 게 으뜸이다. 가파른 산길을 마주하면 한판 승부한다. 유일한 무기는 오기뿐이다. 다리는 후들대지만 한 발 한 발 옮기는 발끝과 땅에서 생명을 느낀다. 삶은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하며 체험하는 것이다."

―꼭 그렇게 몸을 혹사시켜야 하나.

"몸으로 고생을 해야 남는다. 세상은 사변적인 말이나 글로 설명되는 곳이 아니다. 자연은 여간해선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다. 몸으로 직접 부딪쳐 땀과 눈물을 흘려야 그 행간의 뜻을 알 수 있다."

Who is… 박상설 그래픽
◇안락만 찾는 건 이미 죽은 거다

―이젠 거친 산길이 힘들 나이 아닌가.

"나는 늘 걷는다. 걷다 죽는 게 바람이다. 몸은 다리부터 약해진다고 한다. 더 약해지고 병들어 한 발짝도 걸을 수 없는 날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지금의 한 발자국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소중한 흔적이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에서는 숨이 턱턱 막히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은 하나의 같은 언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산에 가면 무엇이 달라지나.

"산행은 고생을 사서 하는, 움직이는 명상이다. 무력했던 사람도, 망설이던 사람도, 용기가 부족한 사람도 감성이 넘쳐 활기차게 생활하게 해준다. 공허감이나 상실감도 들판에서 떨쳐버리게 한다."

―자연은 말이 없는데.

"나를 버텨주는 큰 힘은 자연이 주는 고요이다. 숲속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산에서 만나는 이름 모를 야생화, 계곡의 물소리, 이끼 낀 바위, 낙엽 떨어지는 소리, 이 모든 것이 놀라운 힘을 가졌다. 산행 중 땀을 쏟으며 무아(無我)지경에 오르면 교만한 마음이 사라진다. 그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허세나 사치 같은 '가짜'들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지만, 자연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편한 집을 두고 왜 텐트에서 고생하느냐고 주위에서 말리지 않나.

"나태해지기 쉬운 집을 버리고, 불편하고 비좁은 공간에서 사유와 고독을 즐기며 일부러 고생을 하는 것. 이것이 나의 텐트 수행이다. 몸이 안락한 것만 찾는 노년의 삶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사람은 나이를 먹어 늙는 게 아니라 대우받고, 동정받고, 주저앉아 있는 가운데 더 늙어간다. 정년퇴직의 올가미를 벗어나 죽을 때까지 현역으로 뛰어야 한다. 우리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내일보다 오늘이 젊다. 지금이 바로 기회다."

◇"나는 행동가"

박씨는 자연 속 삶을 주제로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산학교에 특강을 나간다. 경남 거창의 인문학 연구 공간 '파랗게날'과 고등학교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기도 한다. "타성에 도전하고, 자연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공부를 하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야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그가 고집스럽게 지키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우선 매주 등산·캠핑·여행을 하고, 남의 도움 받지 않고 직접 살림을 한다. 전철·버스를 탔을 때 앉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하면 '왜 내가 늙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느냐'며 사양한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생활용품은 중고품을 구입한다. 또 쉬지 않고 글을 쓴다.

"낮에는 자연 속에서 걷고 캠핑하고 책을 읽으며 밤에는 사력을 다해 글을 쓴다. 나의 글은 늙는 것도 죽는 것도 잊은 채 몸을 펜대 삼아 흙에 흔적을 남기는 과정을 처절하게 기록한 것이다."

그가 최근 펴낸 책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가 바로 그 기록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해주고 싶었다"며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놀고 먹고 마시기만 하는 소모성 놀이 문화를 버리고 주말 레저 농원을 생활화할 것을 권하고 싶다"고 했다.

―별명이 '깐돌이'라는데.

"내가 깐깐하다고 동료들이 붙여주었다. 등산 중 한 번도 땅바닥에 앉아 쉬어본 적이 없다. 정 힘들면 서서 쉰다. 돌멩이같이 단단하다는 의미도 있다."

―가족들과 떨어져 산다고 들었다.

"뇌졸중 진단을 받은 이후 가족 회의를 해서 따로 살기로 합의했다.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나 자신도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둘째 딸은 가끔 캠핑장에서 만난다. 손자들에게도 스스로 개척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내가 나이 들어서도 자기 세계에 빠져 열심히 사니까 가족들도 좋아한다."

그는 커다란 배낭을 보여주며 "자연을 찾아 전 세계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고 했다. 배낭에는 여권, 세계지도, 나침반, 미니 버너, 누룽지(비상식량), 고글, 줄자 등이 들어 있다. 그는 "이것만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오대산 산중은 평지에 비해 빠르게 해가 졌다. 초가을 저녁의 서늘한 기운이 몰려오더니 낮에는 느끼지 못했던 나무와 숲 냄새가 진동했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풀벌레들 세상이 됐다. 그는 "산속에 들어와 한번 둘러보고 스쳐 지나가는 것과 나무와 함께 밤이슬 맞고 자며 자연 속에 푹 빠져보는 것은 천지 차이"라며 "나는 세상의 사치와는 거리가 멀지만, 깊은 산중에서 황홀한 노을을 바라보고 하늘에 별이 쏟아지는 모습을 감상하는 '자연의 사치'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당신의 인생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행동가! 자연 속에 나를 던지는 행동만이 나를 바꾼다는 믿음으로 살았다. 내게는 자연이 직장이다. 죽을 때까지 산으로 출근하고 걷다가 쓰러질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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