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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 달빛보기

한국문인 인터뷰

by 달빛아래서 2010. 8. 24.

 


창공을 훨훨 비상할...
*작 가 명 : 임영자
 

돌밭에 뿌려진 하나님의 씨앗

임영자 이사장은 뚜렷한 이목구비, 큰 눈매가 우선 시원한 미인이다. 세련미가 넘치는 의상, 국제무대에서도 당당함이 엿보이는 한 구석 어디에도 구김이 없는 매너를 갖추고 있는 NGO였다.
그는 지난 1950년 6·25가 한창인 1952년 경북 영주에서 5녀 1남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그 시절의 가난은 동족상잔의 비극 때문이었다.
임 학생의 가정 형편은 어려웠지만 하나님은 예비하신 곳이 따로 있어 기독교 재단의 장학금으로 하나님의 훈련을 제대로 받으며 고난을 이겨 나갔다.
공부 중에도 상금을 타는 대회는 가리지 않고 글짓기 대회, 그림 그리기, 붓글씨, 웅변대회까지 뭐든 나가는 동안 그의 내면에 숨겨진 재능과 소질을 발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대개 이러한 재주꾼들은 한두 가지에 만족을 하지 않는다. 그는 또 연식 정구선수로써 경북도민체전에서 3년을 연속 우승을 하는 등 대외적으로 많은 공로를 세웠다. 사랑을 듬뿍 받은 총학생회장을 맡아 책임감 넘치는 학창 생활을 활기차게 보냈다. 그것은 가난으로 힘겨우신 부모님에게는 큰 위로를 드리는 예쁜 딸로 성장해 갔다.
하나님은 돌밭에 씨앗을 뿌렸지만 햇빛을 보기 위해 어둠을 뚫고 새싹을 틔우는 힘을 길러 주셨다. 벌써 이 새싹은 누가 보아도 비범해 가며 모든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펼쳐진 광야에서

광야는 보기만 해도 아득하다. 그러나 남보다 큰 꿈을 꾸는 사람은 원래 광야를 만나게 된다. 광야는 낮에는 뜨거운 햇빛이 내리 쬐이고 밤에는 몹시 춥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시계 줄 공장의 여공이 되려던 중 담임선생님의 인도로 다시 내려가 영광여고의 장학생이 된다. 도민체전에 나가 체력을 다지고 그 사이사이 문학과 미술을 놓치지 않고 지도 받으며 팔방미인이 된 이 학생은 고생을 하면서도 학생회장으로서 당당하게 졸업을 했다.
그는 부산의 간호전문대학에 입학했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을 보장 받는 희망을 안고 가정교사, 간호조무사, 그 외 뭐든 해냈다.
그러나 병원 실습이 시작되면서 마지막 학년에 주야의 실습은 아르바이트의 차질로 하루 종일 잠을 자지 못한 날이 많아졌다. 그는 과로로 건강이 악화되어 한 해를 휴학하며 몸을 추스르고 다시 복학해 졸업과 동시 국가고시에 합격해 본 병원에 취업이 된다. 새로운 꿈을 향해 다시 그의 도전은 시작되고 상경을 하게 된다.

시야를 넓힌 전화위복(轉禍爲福)

간호사가 되어 독일행을 꿈꾸었으나 그 길이 막혔다. 한국해외개발공사에서 근무하게 된 인연으로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 그때 월급은 한국의 5배의 많은 급료였지만 치안이 불안하고 외국인 여자 혼자로서는 외출도 어려웠고 46도가 넘는 열사와 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 견뎌냈다. 그것은 그에게 시야를 해외로 돌려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그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찾을 수 있는 자각을 하게 된다.
그가 공부할 때 힘겨웠던 일이 상기 되어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대한 관심이 일었다. 그는 귀국해서 결혼을 하고 간호사의 일과 건설업을 하는 남편을 도우면서 자신도 건설업에 뛰어들어 상당한 재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한국국제협력단의 직원들과 ‘사랑의 집짓기운동’도 했다. 이처럼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하는 그에게 한 제의가 있었다.
몽골에 대한 교류협력과 문화증진, 교육진흥, NGO의 활동 등을 지원하는 한몽교류진흥협회의 이사장직을 그는 수락한다. 그 때부터 그는 민간 외교관으로서 봉사자의 길을 힘차게 내딛게 된다.

한몽교류진흥협회(KOMEX)

KOMEX (Korea Mongolia Exchange Promotion Institute)
지난 날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외국의 많은 도움을 받아 현재 세계경제 10위권에 드는 경제 강국이 되었듯 이제는 개도국에도 교류를 통해 빚을 갚는 마음의 취지로 맺은 것이 한몽교류진흥협회이다.
몽골은 건국 800주년을 맞고 있는 현재, 국민총생산이 800불정도로 1970년대의 우리의 경제환경과 비슷하다. 인구는 약 300만 명이지만 광활한 영토와 세계 5대 자원보유국으로 국토는 우리의 7.4배이고 석탄, 구리, 원유, 텅그텐, 주석, 니켈, 아연 등 우리나라에 없는 자원의 보고이다. 종교는 라마불교이지만 최근 선교활동으로 기독교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와는 1990년에 한몽수교를 맺었다.
몽골은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운 유전자 구조를 가지고 있어 바로 친숙할 수 있고 앞으로 상호 발전 가능성이 많은 나라다. 한몽협회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후원을 받은 의류, 생필픔, 의료기구 등을 몽골에 전달하고 있다. 또한 국내기업의 몽골투자 사업지원, 한몽 인사, 기업인, 경제인 등 상호 방문을 지원하며 현장방문으로 한국의 발전상을 알게 한다. 재한 몽골인의 고충을 상담하고 민원도 지원하며 몽골의 인재들에게 장학금을 주선하는 등 일이 산적해 있다. 폐차될 위기에 있는 디젤 버스를 몽골로 보내면 ‘City bus’로 운영되도록 하는 사업과 보석가공학원을 작년에 설립해 기술자를 키우는데도 힘을 보태고 있다.

‘희망 한국 몽골축제의 날’

2006년 10월28일 세종대학교에서는 재한 몽골국민을 위한 축제가 KOMEX 주관으로 열렸다. 몽골전통음악, 몽골전통기예단, 한국사물놀이 등 출연하고 몽골정부, 우리금융그룹, 대한항공 등이 후원한 큰 축제였다. 이 축제에는 유학생, 근로자 이외 한국에 체류하는 몽골인은 모두 초청해 그들의 향수를 달래 주었다. 한국은 고마운 나라라고 연일 엄청난 뉴스가 쏟아졌다.
인터넷장비를 지원하고 땅을 40년 동안 무상임대로 2,700만평을 확보하여 농축산 개발을 통한 양국 경제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그는 여류 시인으로 소녀 적에 닦아 놓은 문학적 정서가 어디가나 그를 따라 다녔다. 그는 이제 시인으로 등단하고 늘 시작노트를 들고 있는 시인이다. 몽골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있는 그는 NGO사업이 발전하여 양국에 큰 기여를 할 때 임영자 이사장은 이 시대에 우뚝 선 여장부로서 우리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많은 박수 속에서 창공을 멋지게 훨훨 비상할 날이 머지않음을 확신한다.
글 | 박지연(시인, 수필가, 기자)

 

2007-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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