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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피어난 제2의 야생화 붐

by 달빛아래서 2013. 10. 23.

[김민철의 꽃이야기]

스마트폰으로 피어난 제2의 야생화 붐

  •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 입력 : 2013.10.22 03:04

    야생화 찾아다니는 인구 급증… 디카에 이은 스마트폰 보급 덕분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꽃사진'… 주5일제, 등산·레저 열풍도 한몫
    지자체도 도심에 '기왕이면 우리꽃'… 꽃 보며 잠시 시름 잊고 위안 얻어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건축가 채동석(50)씨는 요즘 야생화에 푹 빠져 있다. 흔히 보았지만 이름을 모르고 지나쳐온 꽃들 이름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매우 재미있다고 했다. 2주 전에는 컴퓨터에 꽃 폴더를 만들어놓고 어디서든 꽃이 보이면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다. 도감을 뒤져도 이름을 찾기 어려운 것은 SNS에 사진을 올려 도움을 받고 있다. 채씨는 "10여일 고생한 끝에 한강 선유도공원에서 찍은 꽃이 붉은인동이라는 것을 알아냈을 때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은 직업상 길을 걸을 때 주로 건물을 보았는데, 요즘은 꽃이나 풀만 보이면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겼다"고도 말했다.

    채씨처럼 꽃, 특히 야생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다시 크게 늘고 있다. 경기도 천마산·화야산·화악산, 강원도 곰배령·분주령·만항재 등 야생화로 유명한 산에선 야생화 찍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풍경이다. 올가을 정읍 구절초축제에는 50만명이 다녀갔다. 야생화 사이트는 물론 꽃 사진을 올리는 개인 블로그, 카페도 수없이 많고, 페이스북·카카오스토리에서도 꽃만 집중적으로 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야생화는 일부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야생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표적인 야생화 동호인 사이트인 '야사모(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회원 수는 2003년 초반 5000명에서 2004년 말 1만명을 넘었고, 누적 회원 수는 3만명이 넘을 것으로 사이트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야생화 전문가들은 야생화 인구가 최소 1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초창기에는 사진만 찍는 동호인들이 많았지만 식물학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성을 갖춘 야생화 동호인들도 늘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3년 전부터 야생화 동호인들과 희귀식물 모니터링·보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야생화 인구가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초반엔 디지털카메라 보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디카는 2000년 전후 200만화소급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대중화됐다. 200만 화소면 기존 필름카메라와 비슷한 품질의 사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은 "디카 보급과 함께 사람들이 꽃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야생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다"며 "디카 피사체로 꽃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잠시 잠잠해진 야생화 붐은 최근 스마트폰 보급으로 또다시 불붙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화질이 일반 디카와 별 차이가 없어지면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과거 전문가용 카메라 화질의 꽃 사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접사 기능으로 꽃 사진을 찍으면 일상적으로 쓰기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 기자도 본격 야생화 탐방이 아닌, 가까운 동네 산에 갈 때는 굳이 카메라를 챙기지 않는다. 초기 단계지만 야생화 이름을 알려주는 앱까지 등장해 스마트폰만 있으면 사진을 찍고, 바로 무슨 꽃인지도 알 수 있는 시대가 머지 않아 올 것 같다.

    
	[김민철의 꽃이야기] 스마트폰으로 피어난 제2의 야생화 붐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디카 보급과 함께 주5일제 실시도 야생화 인구가 늘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주5일제가 300명 이상 기업체로 확대 실시된 것은 2005년이었다. 주5일제 실시와 함께 등산·레저 열풍이 불었다. 북한산을 찾은 탐방객은 2006년 487만명에서 지난해 774만명으로 늘어났다. 산을 찾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산에 있는 야생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것 같다. 김태정의 '쉽게 찾는 우리 꽃' 시리즈,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이유미의 '한국의 야생화'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도 이즈음이다.

    더구나 굳이 산에 가지 않더라도 서울 등 도심에도 꽃과 나무 등 식물이 많아졌다. 서울시가 올봄 '서울 꽃으로 피다' 캠페인을 벌이면서 심거나 파종한 꽃이 벌개미취·비비추·구절초·노루오줌 등 600만본이다. 기왕이면 우리 꽃으로 화단을 조성하려는 지방자치단체들도 늘어나 도심에서도 야생화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요즘 청계천에 가면 구절초·쑥부쟁이·억새 등은 물론 노란 산국까지 야생 가을꽃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고령화와 조기 퇴직 여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꽃은 아무래도 중년 이후에 더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야생화 강좌에는 40대 이후 여성이 많고, 퇴직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숲해설가 강좌 등을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꽃을 보면서 잠시나마 시름을 잊는 것 같다. 이해인 수녀는 '꽃이야기 하는 동안은/우리 모두/꽃이 됩니다/어려운 시절에도/꽃이야기 하는 동안은/작은 평화/작은 위로/살며시 피어납니다'라고 했다. 학생들에게 야생화 체험을 하게 했더니 생명 존중, 정직 등 인성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 더 많은 사람이 꽃에 관심을 가져 위안과 함께 삶의 활력도 얻었으면 좋겠다. 야생화 인구가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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