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 느낀 농촌여성의 고달픔을 ‘내 아내의 농업’이라는 시에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시처럼 과거 농촌사회에서의 여성은 생계를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고 끊임없는 어려움에 인내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시대에 따라 농촌사회가 변하듯이 여성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요즘 귀농 귀촌한 농촌에서 여성자신 또는 더불어 사는 여성의 여러 가지 발전적 역할 변화를 알아본다.
야생화, 채소 가꿔 나누며 자연 고마움도 전파
도시에서는 전업주부로 단지 자식교육, 가족의 행복만을 위해 전념했던 여성농업인 최서윤(55)씨는 귀촌해 의미 있는 삶의 방식을 찾았다. 은퇴 후 완벽한 농부가 되기를 원하는 남편 차수병(전직 CEO)씨를 따라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에서 야생화를 재배한 지 8년째. 꽃 재배를 통해 주부의 시선에서 사회적 시각으로 점점 변하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꽃을 재배하며 힘든 갱년기를 극복하고 생각의 깊이를 더 하게 되었다는 최 씨. 과거에는 무심코 보았던 부케도 지금은 유심히 살피게 된단다. “제비꽃이 홀씨가 되어 흩어지는 지, 수십 종이 있는 지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모르는 꽃을 재배하며 하나씩 알아가고 그 꽃을 좋아하는 이웃에게 분양하며 자연을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되었죠.” 그녀는 ‘타샤의 정원’으로 유명한 동화작가 겸 일러스트 화가였던 ‘타샤 튜터’와 꼭 같지는 않더라도 태어날 손자, 손녀에게 3월, 5월에는 무슨 꽃이 피고 지는 지를 자신 있게 알려주는 할머니만 돼도 좋겠다고 한다.
<야생화 속에서 농업에 관해 늘 도움을 주는 남편과 함께 있는 최서윤 씨>
야생화를 재배하다 보니 유기농 농업에 관심이 가더란다. 그녀는 귀농 귀촌 농업대학 출신인 남편의 도움으로 블루베리를 재배하여 농업생산자이며 판매자로서의 기쁨도 누렸다고 했다. 작년에 첫 수익이 나서 남편에게 용돈을 주니 뭐라 말할 수없는 기쁨을 느꼈다고. 다음 목표는 누구나 인정하는 명품 블루베리를 생산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요즘 귀농, 귀촌한 농촌사회에는 농사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자신은 지금의 생활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어떤 상황에서도 선택의 문제에 부딪치면 여성농업인의 위치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즉 누가 3백만 원을 주며 “샤넬 백 또는 야생화 중에 어느 것을 사겠습니까?”고 물으면 당연히 “야생화요”라는 식이다.
농촌기술센터에서는 농사를, 여성문화원에서 등공예, 한지공예를 배우고 있다. 새로운 역할을 찾기 위해서다. 그 일환으로 가족의 건강을 위해 된장을 매년 담그고 있다고 한다. 상추, 고추 등 채소를 심어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자연에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을 소비자에게 전하려고 노력 중이기도 하다.
그린디자이너로, 생태치유가로 활약
도시에서의 경제적인 풍요로움, 사회적 지위를 뒤로하고 여성농업인을 뛰어넘어 농촌사회의 숨은 역할을 찾아낸 사람이 있다. 바로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에 있는 그린야호예술농원의 주인 ‘그린디자이너’ 김은숙 씨다. 농촌에도 학교 앞에 학원 차가 있는 것을 보고 품앗이로 문화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품앗이 규모가 도서관, 마을로 번져 프로그램이 만들어져 운영됐어요. 지원자들이 생기면서 캠프로 발전했죠. 고학력 여성경력단절자의 경력을 되살리는 효과를 봤답니다.” 자신의 작은 생각이 크게 발전해 여성들의 재취업까지 연결됐다는 설명이다.
농촌생활에 빠져 여러 활동을 하는 동안 농촌은 생산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되었다. 우리 전통에는 농한기에 민화를 그리는 농촌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문화가 사라져 허탈한 마음을 채우는 작업으로 밭농사를 시작한 그녀가 캔버스 대신 밭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밭의 유선형 패턴인 전통 농촌문화 방식이 탄생되었다. “이 작업은 호미와 괭이만으로 이루어집니다. 밭을 갈며 허허로운 마음을 채우면서 농사란 생산, 예술 경지를 뛰어넘어 마음이 정화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미술 작업을 하고 있는 그린 디자이너 김은숙 씨>
미술대학 출신인 그녀는 한걸음 더 나가 얼마 전 독일의 한 농부가 그린 그림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씨앗, 꽃, 열매 등 농작물의 단계를 있는 그대로 그린 것이었다. 농촌에서는 농사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도 역시 그 자체로 그려보고 싶어 한다. 또 자신의 작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하는, 할 수 있는 쉬운 예술로써 미술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릴 계획이다.
두 명의 자녀를 둔 엄마로서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농촌 아이는 농사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인지라 농사짓는 법이 통합교과 방식으로 융합되길 바라고 있다. “농촌에서도 교실, 학교가 고정화되어 있어요. 지역에 맞는 교육으로 농업이 교과로 들어가면 좋겠어요. 그러면 아이들도 농사를 지으면서 정서가 순화됨을 느낄 겁니다.” 김 씨가 운영하는 ‘농부학교’에서는 애들이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실제로 농사를 짓는다.
농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던 그녀는 미래에는 ‘생태치유가’로서의 역할을 희망한다. “생태치유는 장점이 많아요. 개인, 집단 상담을 치유하는 과정이 휴먼 다큐예요. 자연 속에서 상담 받으면 치유도 빠를 겁니다. 더불어 생태치유를 받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그 지역에 굉장한 시너지를 만들어 낼 거예요.”
도시에서 안정적 직장생활을 하다 내려온 여성이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한탄하는 소리를 그녀는 종종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직장생활에서 사용한 달란트와 농촌생활에서 발견한 재능을 접목하면 새로운 창조적인 역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즉 빵을 만든다고 하면 허브를 사용한 빵을 굽는다는 식이다. 살고 있는 지역에서 섬세한 감성으로 깊게 보면, 귀농 귀촌한 여성이 새로운 역할을 만들 숨은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고 그녀는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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