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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야기

50년전 아버지가 눈물 뿌린 땅에서 ‘통일의 씨앗’ 모색

by 달빛아래서 2014. 3. 24.

[토요판 커버스토리]50년전 아버지가 눈물 뿌린 땅에서 ‘통일의 씨앗’ 모색

기사입력 2014-03-22 03:00:00 기사수정 2014-03-22 09:00:14

 

[朴대통령 독일 방문 의미는]



“ ‘라인 강의 기적’은 결코 기적이 아니라 국민들의 노력으로 이뤄진 필연이었다. 전후 폐허 위에서 복지국가를 건설한 독일, 공산국가에 승리를 이룩하고 통일의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는 독일을 우리는 다만 부러워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도 경제건설을 더욱 서둘러야 하겠다.”

1964년 12월 15일 오후 7시 5분. 8일간의 독일 방문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성(一聲)이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고작 80달러였던 시절.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의 유럽 방문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반세기가 지나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독일을 방문한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의 1인당 GDP는 2만3838달러로 298배로 늘었다.

“독 일은 한국과 저에게 정말 특별하고도 고마운 나라다. 차관을 빌리기 위해 서독을 방문했던 아버지께서 함보른 탄광에 찾아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을 때 그 눈물을 닦아주었던 뤼브케 대통령의 손수건을 기억한다. 그 손수건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반을 만든 역사적인 손수건이었다. 당시 독일이 제공한 차관 1억5000만 마르크는 근대화와 경제개발에 너무나 소중한 종잣돈이 됐다.”

2006년 9월 국회의원 자격으로 독일 아데나워 재단을 찾은 박 대통령의 연설에는 한국 경제가 도약할 발판을 놓아준 독일에 대한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제2의 한강의 기적 꿈꾼다


1964년 박 전 대통령은 전용기가 없어 독일 민간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본∼도쿄 상용노선을 변경시켜 일반 승객과 함께 타고 독일에 갔다. 무려 7개 도시를 경유해 서독 쾰른 공항까지 가는 데 28시간이 걸렸다.

독 일 초대 경제부 장관을 지낸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많은 영감을 제공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손을 잡고 “한국은 산이 많던데 산이 많으면 경제발전이 어렵다. 고속도로를 깔아야 한다. 고속도로를 깔면 자동차가 다녀야 한다. 자동차를 만들려면 철이 필요하니 제철공장을 만들어야 한다. 연료도 필요하니 정유공장도 필요하다. 경제가 안정되려면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조언은 고스란히 중공업 육성 정책으로 구현됐다.

50년 후 딸인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국가비전으로 내세우며 중견기업 육성을 추진 중이다. 그는 취임 후 여러 차례 “독일은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히든 챔피언’ 중소기업이 1300개인데 우리나라는 23개뿐”이라고 아쉬워했다.

박 대통령은 독일이 통일 이후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유럽의 성장엔진으로 자리 잡은 건 중소·중견기업의 견실한 성장 덕분으로 여기고 있다.

12일 무역투자진흥회의 때는 독일의 성공사례를 세 번이나 인용했다.

“우 리 중소·중견기업의 2.7%만이 수출에 참여하고 있는데 독일은 11%가 넘는다.” “독일은 중소기업이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실험하고 싶으면 가까운 지역의 대학이 그것을 맡아준다고 한다. 이처럼 대학과 기업이 서로 연계가 잘 된다.” “독일의 뒤셀도르프는 항만 기능이 몰락하자 그것을 버린 게 아니라 미디어 시티로 재생시켰다.”




통일 대통령의 길을 묻다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은 서베를린에서 빌리 브란트 당시 시장을 만나 “베를린과 판문점의 비극이 끝날 날이 가까워졌다. 비극을 종결시켜야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영구화할 수 있다”며 통일의 의지를 밝혔다. 이어 베를린 장벽을 시찰했다.

베를린의 비극은 막을 내렸지만 판문점의 비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독일은 통일과 관련해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박 대통령이 공을 들이고 있는 통일준비위원회도 옛 서독의 통일문제자문위원회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예 를 들어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서울과 평양에 상주대표부 역할을 하는 남북교류협력사무소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동서독은 1974년 양국의 수도였던 동베를린과 본에 상주대표부를 설치했다. 동독에 들어선 서독 상주대표부는 동독 현황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독 각계 인사들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해 동서독의 가교 역할을 했다.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앙겔라 메르켈은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다.


진정한 과거사 청산의 모범

독 일 검찰은 18일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의료진으로 일하며 수감자 1721명을 가스실로 보내 살상에 가담한 93세 나치 전범 용의자를 체포했다. 로널드 라우더 세계유대인총회 회장이 “(70년이 지났는데도) 끝까지 추적한 독일 정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독일 정부는 나치가 저지른 전쟁 범죄를 독일 국민의 공동 책임으로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

50년 전 박 전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에르하르트 총리는 “일본과도 손을 잡아라. 독일은 프랑스와 16번을 싸웠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끝난 뒤 우리 총리가 프랑스 대통령을 찾아가 악수했다. 지도자는 미래를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듬해인 1965년 한일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이제는 독일에서도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월 말 일본 도쿄의 도서관에서 300권이 넘는 ‘안네의 일기’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 관련 서적들이 훼손되자 독일 언론들이 대서특필했다. 베를린 시내에는 나치 과거사 관련 시설이 40여 곳에 이르지만 일본의 야스쿠니신사처럼 전범을 추모하는 시설은 없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의 양자회담에서 “메르켈 총리가 (강제수용소인) 다하우 기념관을 방문해 연설하는 모습에 우리 국민도 감명을 받았다”며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일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대성통곡한 아버지, 그 후 50년

지난해 10월 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미자의 구텐탁, 동백아가씨’ 공연이 열렸다. 1960, 70년대 독일에 파견됐던 광부와 간호사들은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함께 부르며 향수를 달랬다.

이 행사에 박 대통령은 동영상으로 직접 축사를 보냈다. 박 대통령은 “동포 여러분들은 우리 대한민국이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에 머나먼 독일에서 가족과 조국을 위한 길에 앞장서셨습니다. 여러분들의 귀한 땀방울은 조국의 경제를 일으키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저와 대한민국은 그 소중한 헌신과 노력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50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루르 탄광지대의 함보른 광산을 방문했다. 현지 광부들로 구성된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하자 500여 명의 참석자들은 눈물바다가 됐다. 단상에 올라간 박 전 대통령은 준비한 원고를 옆으로 밀쳤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이게 무슨 꼴입니까.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에게만큼은 잘사는 나라를 물려줍시다”라고 외쳤다.

50년이 지나 세계 10위권 경제부국의 대통령이 된 딸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동포간담회를 갖는다. 가난했던 아버지 시대에 독일로 파견돼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된 광부, 간호사들과 어떤 얘기를 나눌까.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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